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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뜨락] ③ 시인 김명인 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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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뜨락] ③ 시인 김명인 울진

입력
2008.09.1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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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애가 눈물 가득 잔물결로도 출렁거리고 서러울수록 그 위에 엎어져 함께 흐느껴 가면 어둠 속 더욱 넓어지는 소리의 이 한없는 두런거림 여기서 자라 이 물결에 마음 붙인 사람들의 오랜 고향을 나는 안다'( 다시 영동에서' 부분)

바닷가에 탯줄을 묻은 사람들은 생과 사의 고리를 어쩔 수없이 그 바다에 이어 놓고 산다. 태생의 바다는 그만큼 원초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나는 동해의 한적한 바닷가마을에서 태어나, 수평선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 시 속에 바다의 풍광이 유난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생업을 선택하려고 나는 오징어배를 탔었고, 심한 배멀미 탓에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태백준령을 넘어서 도시로 나왔었다.

그렇게 해서 동해를 등졌더라도 그때까지 길러졌던 무의식까지야 어찌 떨칠 수 있었겠는가. 첩첩한 체험들을 털어버리려고 애썼건만 부지불식간에 태생의 정서 속으로 빠져들곤 했었다. 그것이 나의 한계이며, 벗어버릴 수 없는 내 시의 굴레일 것이다.

내 고향'후포'의 원래 지명은'후리포'이니, 육지에서 그물의 양끝을 끌어당겨 어로하던'후리그물질'이 성행한 포구라는 뜻일 것이다. 어릴 적만 해도 원양에서 쫓겨온 멸치떼가 시커멓게 동네 앞바다를 물들이면, 마을의 선도(先導)가동산에 올라 목청껏 고함을 지르거나 횃불을 흔들어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장정들이 그물을 실은 배를 부리나케 띄워 밀려온 고기떼를 가두면, 남녀노소할것없이 온동네가 달려 나가 그물의양끝을 끌어당겼다. 그물 폭이좁혀질수록 찢어져라 요동치던 고기떼의 장관으로 내 어린 시절은 얼마나 생동했던가.

두레의 짓으로 나눈 제 몫의 생선을 대바구니며 함지에 받아 이고서, 온통 비린내 나는 웃음꽃을 피우며 흩어져가던 마을 아낙들의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 박혀서 생생하다.

그 모래사장에서 여름밤이면 모기떼를 피해 멍석을 깔고 군용담요를 덮고 잠을 청하곤 했었다. 낮동안 뜨거운 햇살을 머금고 달구어진 백사장에 등을 대고 누우면 새벽녘까지 따스했다. 눈높이로는 숱한 별들이 반짝이고, 은하가 이마를 치고 귀밑께로 조금 더 기울면 어느새 선들바람 불어와 여름은 끝이났다.

어머니와도 같은 그 바다지만 어느 순간에는 광포한 힘을 간직한 무서운 풍랑으로 돌변하므로, 내 고향 사람들에게는 바다 자체가 외경의 대상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던가. 마을 앞 바다에서 멸치잡이 하던 목선 몇 척이 갑작스레 불어닥친 광풍으로 뒤집어지고, 장정 여러명이 떼죽음한 사건은 어린 나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지척에서, 사람들이 빤히 지켜보는 눈앞에서, 죽음은 어부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뱃사람들이 특별히 미신에 민감하다고 하여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어촌에는 제삿날이 같은 집들이 흔하다.

숙명처럼 버티고 있는 바다 때문에, 어촌 사람들은 흐르는 세월에 슬픔의 앙금을 닦으며 다시 거기에 삶을 건다. 자연이란 인위와 달라 인간의 분노가 닿지 않는 대상인 것이다. 스스로의 운명조차 바다에 붙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러므로 차라리 자연 자체라고 말해야 옳다. 그렇다.

귓전에 부딪치는 해조음에 놀라 잠에서 깨어보면, 그 시간에도 캄캄한 밤바다로 어로를 떠나는 부지런한 발동선의 원동기 소리가 들려오고, 제철에 맞추어 어구를 준비하는 늙은 어부의 노역이 가물거리는 호얏불 밑에서 새하얗게 밤을 밝히던 곳. 무섭게 다가왔던 가난에는 언제나 속수무책으로 방기(放棄)되었던 사람들의 마을. 한낱 생존의 싸움에서조차 무기력하게 마침내 체념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던 소박한 이웃들의 터전이 나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체험 속의 바다는 삶과 죽음의 밑자리이자 그 영원성으로 이어진다. 바다는 끝없는 출렁거림으로상승과 하강을 되풀이하면서 살아있는 자들의 시간을 무화(無化)시킨다.

날마다 궁륭 높이 해수레를 밀어올려 그 좌절을 딛고 생생하게 실감되는 새로운 설렘 속으로 우리를 실어 나른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바다는 추동(推動)의공간이자 침강의 공간이며, 열린 공간이자 닫힌 공간이다.

멀리 뻗어나가는 수평선은 이곳에 내가 갇혀 있음을 역설로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어디론가 끝없는 동경으로 나를 이끈다. 나는 내 시를 통해 죽음과 삶, 어둠과 밝음, 갇힘과 탈출, 절망과 희망이 수없이 교차하는 그 바닷가를 내식으로 노래하고 싶었다.

내생의 망망대해저 너머에 무엇이 있어 나를 기다리는지, 나는 그것이 늘 궁금했다. 삶의 모순뿐 아니라, 그것의 날카로운 부딪힘을 통해 생의 갈등을 뼈저리게 했던 것이 내 고향 동해바닷가였던 까닭에 나는 그 바다館?내 실존이 설명되어지길 바랐었다.

오랜만에 다시 가 본 내 고향 후포, 부두에 매인 채 빈 배들은 하릴없이 출렁거리며 출항을 꿈꾸고, 선술집들은 오래 전에 이미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횟집으로 바뀌어 떠들썩하다. 가버린 세월은 언제나 풍요로운 것인가. 출렁거림이 할 일의 전부란 듯이 저렇듯 고즈넉한 바다. 이 우주적인 바다의 어디에 내 모래알의 시간이 흔적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 한국소설에서 고향의 의미

"흥, 그렇구마. 무너지다 만 담만 즐비하게 남았드마. 우리 살던 집도 터야 안남았는기오, 암만 찾아도 못 찾겠더마. 사람 살던 동리가 그렇게 된 것을 혹 구경했는기오?"

궁핍한 고향을 떠나 중국, 일본, 조선땅을 정처없이 떠돌다가 귀향하지만, 이미 황폐해진 고향을 등지게 된다는 식민지 시기 한 농민의 삶을 다룬 현진건의 <고향> .

고향을 떠나 출세한 주인공이 금의환향한다는 전통적 서사 대신 고향에서 쫓겨나고 밀려났던 주인공이 다시 돌아와보니 이상태(理想態)로서의 고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작품의 전개방식은 당시의 사회ㆍ경제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봉건적인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가 일본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요구에 맞게 재편되는 1920년대 중반 이후 토지관계를 둘러싼 농민간의 갈등은 비등점으로 치달았고 이는 많은 가난한 농민들이 고향과 유리되는 현실을 낳았다.

이기영의 <고향> , 최서해의 <탈출기> 와 <홍염> 등 이 시기 중요한 리얼리즘 소설들이 대개'고향 상실'을 모티프로 창작된 것은 이런 맥락에서 필연적이었다.

1970년대 고도성장기에 들어서면서'고향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테마는 다시 우리 소설사의 전면으로 떠오른다. 군사정부의 의도적인 저곡가 정책과 저임금 노동자를 필요로 했던 공업화 정책이 결합되면서 본격적인 이촌향도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이농민들은 뿌리뽑히고 괴로운 삶을 위안받고 싶어 다시 고향을 찾지만, 그곳의 자연환경은 이미 파괴되고 공동체적 윤리와 도덕 같은 전통적 질서는 붕괴됐다.

산업화 배면에서 사라지고 왜곡된 고향의 모습을 묘사한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 근대화 과정에서 해체되는 고향의 전통과 기존 질서에 대한 향수를 그린 이문구의 <관촌수필> 등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소설이다

'돌아가고 싶으나 막상 도착하는 순간 떠나고 싶다'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곳, 곧 소시민의 실존적 불안을 반영하는 공간인 김승옥과 이청준의 고향, 유년기의 추억에 대한 상상력을 환기하는 곳이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을 상기시키는 공간인 임철우의 고향, 공간적으로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 격절돼 '가고 싶지만 가고 싶다고 말할 수 없는' 자기부정적인 실향의식을 낳은 이호철 최인훈 등 월남작가들의 고향은 한국 소설의 시원적 모티프였다.

우찬제 서강대 국문과 교수는"4ㆍ19세대로부터 6ㆍ3세대, 386세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고향이라는 소재는 한 세대의 역사적인 삶과 관련된 문제적 공간이었다"며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작가들은 시골이 고향이라고 하더라도 대중매체의 발달로 고향에 대한 향수를 상실했으며, 이제 우리 문학에서'고향'이라는 소재의 세대적 의미는 소멸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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