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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바둑 경기 룰 꼼꼼하게 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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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바둑 경기 룰 꼼꼼하게 손본다

입력
2008.09.1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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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전 11시부터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서 제10기 맥심커피배 입신연승최강전 예선 1회전이 시작됐다. 한창 대국이 진행되던 중 갑자기 대국장 한 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문명근과 백성호의 대국 도중, 백성호가 착수를 하지 않고 계시기 단추를 눌렀다고 해서 문명근이 "반칙이 아니냐"며 입회인에게 유권 해석을 요청한 것. 그래서 대국이 중단된 채 왈가왈부 입씨름이 벌어졌다.

백성호는 "대국 진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가벼운 실수이므로 상대편 단추를 다시 눌러 원상태로 돌려 놓은 후 대국을 계속하면 된다"고 항변했다. 그렇지만 문명근은 "어쨋든 잘못 아니냐. 규칙 위반이 분명하다면 당연히 벌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맞섰다. 바둑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입신'(9단)들도 경기 규칙에 대해서는 아리송한 모양이다.

원래 계시기는 내가 착수한 후 단추를 누르면 상대편 시계가 돌아가게 돼 있다. 따라서 먼저 착수를 한 후에 계시기를 누르는 게 원칙이지만 혹시 실수로 잘못 눌렀다 하더라도 평소에는 그리 큰 문제가 안 된다.

양쪽 모두 시간이 충분히 있을 경우 상대방이 너그럽게 이해하고 자기쪽 단추를 한 번 더 눌러 원상태로 돌리고 대국을 계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대국에 열중하다 보면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한데 초읽기 상황이라면 약간 문제가 다르다. 이번 사건 당시 문명근이 마지막 초읽기에 몰렸고 백성호는 초읽기가 3번 남아 있었다. 따라서 문명근은 자기 시계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신경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사안을 굳이 정식으로 문제 삼은 것이다.

결국 입회인을 맡은 서봉수에게 최종 판단 책임이 주어졌다. 서봉수가 나름대로 여기저기 자문을 구했지만 아무도 확실한 유권 해석을 내리지 못 했다. 서봉수가 한참 고심 끝에 경위야 어떻든 백성호가 착수를 하지 않고 계시기를 누른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 반칙패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백성호는 불만이다. "당시 후배 기사들도 함께 대국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문제가 시끄럽게 확대되는 게 싫어서 일단 입회인의 판정을 받아들였지만 그 같은 사소한 실수로 반칙패를 당한 건 너무 억울하다.

내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당시 나는 초읽기가 3개나 남아 있었으므로 초읽기를 하나 사용하게 하는 정도의 벌칙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측의 대결에, 다른 프로 기사들도 각자 입장에 따라 찬반 양론으로 갈렸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이 사건에 대해 아무도 '정답'을 말할 수 없다. 현행 한국기원의 경기 규칙 어디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더러 유사한 '전례'도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바둑은 예도로 취급돼 왔기 때문에 바둑 경기 규칙은 대강 원칙적인 차원에서만 언급됐을 뿐, 실제 대국 현장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분쟁은 대국 당사자끼리 합의해 처리토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한 쪽이 명백히 중대한 반칙을 저질렀더라도 상대가 굳이 이를 문제 삼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도록 돼 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바둑이 체육으로 자리매김하고 승부가 강조되면서 보다 세부적인 경기 규칙을 갖출 필요성이 커졌다.

한국기원의 경기 규칙은 10여년 전에 만든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시대에 맞지 않고 내용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계시기 관련 규정은 "계시기 위에 손을 올려 놓을 수 없다", "초읽기 때 화장실에 갈 경우 착수를 한 후 일시 정지를 누른다", "사석이 많을 경우 사석을 들어내는 동안 계시기를 멈출 수 있다" 등에 불과하다.

한국기원 프로기사회에서가 최근 '룰 위원회'를 구성, 바둑 경기 규칙을 전반적으로 손질하는 작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그래서다. 김수장 안조영 김만수 최명훈 박승철 등으로 구성된 룰 위원회는 그 동안 수차례 모임을 갖고 경기 규칙 개정안 초안을 마련, 앞으로 두어 차례 더 만나 내용을 다듬은 후 11월 중 기사 총회 의결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새로 개정되는 경기 규칙에는 경기 중 반칙 행위와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이 좀더 구체적으로 명문화된다. 재미있는 조항도 많다. 예를 들어 대국 중 상대방에게 방해를 주는 행위로 현행 규칙에는 부채를 딱딱 치는 소리, 바둑알을 달그락거리는 소리, 호두 굴리는 소리 등에 대해 1차 '경고', 2차 '입회인이 해당 물건을 압수한다'로 돼 있다.

개정안에서는 혼잣말 등으로 시끄럽게 하는 행위도 여기에 추가키로 했는데 문제는 심할 경우 입을 틀어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제재 방식을 어떻게 할지 고심 중이라고 한다.

또 대국 중 모자를 쓰는 행위도 상대를 방해하는 행위로 간주, 금지할 방침이다. 그러나 반바지와 슬리퍼 착용 금지 조항 탉냄?대해서는 "그런 것까지 일일이 규칙에 넣어야 하느냐"는 반론도 있어 보류키로 했다.

이 밖에 계시기와 관련, "반드시 착수를 한 손으로 계시기를 누른다(양손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조항을 넣을지 말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라고.

기자는 이번 사건 판결에 대해 룰 위원회 위원 한 명의 의견을 물었다. "원칙적으로 규칙을 위반한 것은 맞지만 과연 그것이 어느 정도 벌칙에 해당하는 잘못인지는 정확히 판단이 안 선다. 좀더 논의를 해 봐야 할 것 같다"는 답변이었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0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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