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명성' 대신 '실속'을 택했다. 한국 반도체 기술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황의 법칙'을 올해 만큼은 발표하지 않고, 그냥 기존 주력 제품 양산에만 집중하기로 한 것.
이는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의 전략이 '기술선도' 위주에서 '시장주도' 위주로 수정됐음을 의미한다. 업체간 과당 출혈경쟁으로 '치킨게임'에까지 비유됐던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황의 법칙이란?
메모리 반도체의 저장용량이 1년마다 2배씩 늘어난다는 이론. 지난 200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ISSCC)에서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현 기술총괄사장)이 발표해 '황의 법칙'이란 명칭이 붙여졌다.
당시까지 반도체 업계엔 '무어의 법칙'이 철칙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인 인텔의 창업자 고든 무어 전 회장이 1965년 "반도체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고 주장한데서 비롯됐다. '황의 법칙'은 이런 '무어의 법칙'을 깨뜨린 것으로, 실제로 삼성전자는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용량이 2배씩 커진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 '황의 법칙'을 새로운 반도체 교과서로 입증시켰다.
올해는?
삼성전자는 매년 9~10월께 '황의 법칙'을 입증하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 설명회를 개최해왔지만, 올해는 건너 뛰기로 했다. 용량이 늘어난 새 반도체를 내놓지 않고, 기존에 개발 완료된 제품 양산에만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올해도 황의 법칙을 입증할 만한 128기가비트(Gb) 용량의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는 '3차원 셀스택' 기술을 확보했다"며 "그러나 이를 양산 기술로 발전시키지 않고 내년 시장에 주력 제품이 될 32Gb와 64Gb 용량의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에 치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계봉착이냐 실리전략이냐
그러나 반도체 회로를 쌓아올려 용량을 늘리는 3차원 셀스택 기술은 128Gb 낸드플래시를 선보일 만한 양산기술로까지 발전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올해는 '황의 법칙'을 지키기가 어려워졌다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을 갖고 있다는 주장과 실제 제품을 선보이는 것은 다르다"며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력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황 사장은 지난해 3월 대만에서 열린 삼성모바일 솔루션 행사에서 "반도체 용량을 늘리기 위해 회로를 가늘게 만드는 미세화 기술의 개발이 늦어질 수 있다"고 말해 황의 법칙이 계속 이어지기 힘든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기술력에 문제가 없으며 시장상황에 따른 전략수정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메모리 시장은 극단적 과잉공급으로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 결국 견디다 못한 일본 엘피다, 대만 파워칩, 하이닉스반도체 등이 이달 들어 10~30% 감산에 들어간 상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감산 대신 내년 주력제품이 될 32Gb와 64Gb 낸드플래시 양산에 힘을 쏟아 경쟁 업체들을 확실히 따돌리겠다는 전략이다. '황의 법칙'에 매달리지 않고 오히려 한발 앞서 치고 나감으로써 시장지배력을 굳힌다는 포석이란 얘기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실리를 위해 합리적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실 공급 과잉상황에서 삼성이 '황의 법칙'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의 저장용량을 2배로 늘려 제품을 쏟아내면 현재 주력제품가격은 더 폭락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삼성의 실리전략은 오히려 시장 상황개선과 반도체 업계 전체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 삼성전자, 휴대폰용 1Gb' 원디램' 내년 3월 양산
삼성전자는 11일 휴대폰에 쓰이는 1기가비트(Gb) 원디램(1DRAM)을 내년 3월부터 양산한다고 밝혔다. 원디램은 모바일 D램과 듀얼포트램을 하나로 합친 제품. 1Gb 원디램은 기존 512Mb 원디램보다 동작 속도가 25% 이상 빠르고 전력 소모가 적어 고성능 스마트폰에 적합하다. 특히 모바일 D램보다 크기가 작아 휴대폰 소형화에 유리하다.
삼성전자는 내년 3월부터 본격 양산되는 1Gb 원디램이 국내외 휴대폰 제조사들의 휴대폰 40여종에 사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가 지난달부터 양산한 512Mb 원디램은 국내외 휴대폰 제조사들이 올해 안에 선보일 7종의 휴대폰에 장착된다. 김세진 삼성전자 상무는 "3세대 이동통신 도입 이후 초고속 무선인터넷 환경에 맞는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원디램 시장이 2011년까지 연간 300%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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