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정신과 의사 출신인 영국의 정치 원로 데이비드 오웬은 올해 초 <병든 지도자(in sickness and in power)> 라는 저서를 내놓았다. 1970년대 말 외무장관을 지낸 그는 20세기 세계 지도자들의 질병이 국내외 정책결정에 미친 영향을 분석, "지도자의 병이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대표적 사례는 앤서니 이든 전 영국 총리다. 그는 1955년 취임 직후 담낭 절제수술이 잘못돼 재수술을 거듭하면서 심신 쇠약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여러 약물에 의존했다. 원인 모를 고열로 입원하기도 했다. 병든>
■이든은 1956년 이집트가 국유화한 수에즈 운하를 되찾기 위해 출병을 결정했다. 그러나 안팎의 반대 여론과 미국이 주도한 유엔 결의에 밀려 맥없이 철군, '대영제국'의 종식을 확인시키면서 자신도 정계에서 물러났다. 오웬은 이든이 각성제 과용 때문에 늘 발양(發揚)된 상태에 있었고, 이것이 무모한 결단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케네디 미 대통령이 취임 초, 쿠바 피그만 침공을 경솔하게 승인한 것도 각성제에 의존한 탓으로 보았다. 케네디는 부신피질 호르몬이 부족한 애디슨 병을 앓아 피로와 무력감에 시달렸고, 주치의 몰래 암페타민 주사를 자주 맞았다고 한다.
■'병든 지도자'가 국가 명운에 악영향을 준 것은 옛 소련에서 두드러진다. 오웬은 고르바초프가 1985년 54세로 집권하기 전, 역대 지도자가 모두 병든 노인이었던 점이 소련의 쇠퇴를 재촉한 것으로 보았다. 18년간 집권한 브레즈네프는 76세이던 1982년 심장마비로 죽기 오래 전부터 노환을 앓았고 마약성 수면제를 상용했다. 후임 안드로포프는 68세였으나 말기 신장염 환자였다. 그는 과감한 체제개혁과 경제재건을 꾀했으나 이내 병이 악화, 거의 병상에서 지내다 15개월 만에 죽었다.
■안드로포프는 죽기 직전, 젊은 개혁파 고르바초프를 후계로 지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크렘린 원로들은 73세의 병약한 체르넨코를 추대했다. 그는 안드로포프 장례식에서 레닌 묘소 계단을 혼자 오르내리지 못해 부축을 받았다. 이때 악수를 한 오웬은 그가 힘겹게 숨 쉬는 것에서 심각한 폐기종을 짐작했다고 회고했다. 체르넨코는 겨우 13개월 권좌에 머물다 죽었다. 오웬은 이처럼 병든 지도자의 위험성은 심신이 쇠약한 데다 특히 약물 의존 때문에 그릇된 결정을 내릴 소지가 큰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병든 지도자'가 되는 것은 걱정스럽다.
강병태 수석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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