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쾅쿵쾅, 까르르…"
신동범ㆍ동환(3) 쌍둥이 형제가 살고 있는 경기도 구리시의 한 주택 대문에 들어서자 벌써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요란하다. 거실에 조그만 책상을 펼쳐주니 난리를 피우던 녀석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책상 앞에 다소곳이 앉아 기자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엄마 이선영(33)씨가 "오감교육 선생님이 온 줄 알고 공부하려고 그러는 것"이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각각 25ㆍ26주 이른둥이(미숙아를 순화한 우리말)로 태어나 한때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동범, 동환이가 태어나던 3년 전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씨의 눈가엔 금세 촉촉한 이슬이 맺혔다. 이씨는 "이 아이들을 그때 포기했더라면, 그래서 아이들이 지금처럼 옆에 없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며 "부부 사이에도 당시 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말을 꺼내지 않을 정도로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2004년 4월 임신 6개월이던 이씨는 충남 아산에 있는 시댁에 잠시 내려가 있었다. 친정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탓에 임신한 이씨를 옆에서 챙겨줄 사람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시어머니가 부르신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았지만 고부간의 갈등이나 부부싸움은 찾아보기 힘든 단란한 가정이었다.
이씨가 시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평온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아침부터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평소 때 배가 뭉치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래서 이씨는 마침 내려와 있던 남편 신정철(35ㆍ당시 건설업 종사)씨에게 "혹시 모르니 서울로 올라가자"고 했다. 지금 아기가 나온다면 조산인데 아산에는 인큐베이터가 있는 병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부는 사촌의 차를 빌려 타고 밤늦게 서울로 올라왔지만 찾아간 병원들마다 문전박대를 당했다. 금방이라도 아기가 나올 것 같다고 매달렸지만 병원에서는 남은 인큐베이터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원망스러웠다. 병원마다 인큐베이터가 모자라다 보니 다른 병원에서 온 환자에게는 빈 인큐베이터가 있어도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진통은 더욱 극심해져 왔다. 이씨는 "겨우 분당 서울대병원에 빈 인큐베이터가 있다는 걸 확인했던 새벽녘에는 이미 시커먼 아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며 "손으로 틀어막으면서 이동했는데 10분이 마치 10시간처럼 느껴졌다"며 긴박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아기는 일주일 간격으로 태어났다. 형 동범이는 자연분만 했지만 동생 동환이는 아직 나올 준비가 덜돼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늦게 나온 동환이(2.875㎏)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동범이(1.625㎏)는 심각한 저체중이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른둥이들이 그렇듯 동범, 동환이게도 처음엔 건강에 큰 문제가 있었다. 이씨는 "당시 두 아이에게 붙은 병명만 각각 10개가 넘었다"며 "아기들이 끝까지 숨줄을 잡고 버텨낼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건 너무 비싼 병원비이었다. 형제는 태어나자마자 첫 두 달을 인큐베이터에서, 다음 한 달을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퇴원했다. 퇴원 당시 청구된 병원비는 아기 1명당 1,000만원이 넘었다.
뿐만 아니라 퇴원 후에는 이른둥이에게 흔한 시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취도 못한 채 망막 부분제거수술을 해야 했고, 6~12개월간 재활치료도 받아야 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재활치료를 받을 때마다 한 회당 50만~60만원씩 병원비가 나온다.
당시 2,000만원짜리 전세방에 살고 있던 부부로서는 살던 집을 내놔도 감당하기 힘든 돈이었다. 갓난아기를 살리려면 입양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남편 정씨는 아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까지 들었다고 했다.
'벼랑 끝'에 선 순간 병원의 사회복지사가 기쁜 소식을 전했다. 교보생명과 아름다운재단의 이른둥이 지원사업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라는 프로그램에서 퇴원할 때까지의 병원비를 전액 지원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나중에는 원래 규정에 없던 재활치료비도 한 아기당 100만원씩 받았다.
그때서야 이씨는 출산 후 약 한달 만에 처음으로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동범이, 동환이를 찾아가 따뜻하게 안아줬다. 이때 동환이가 슬그머니 엄마의 손가락을 쥐었던 그 순간의 애틋함을 이씨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혹시 아기를 입양 보내야 하는데 애 얼굴이라도 아른거리면 더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 한달간 한번도 아기를 보지 않았다"며 "다른 엄마들은 시간마다 아기를 찾아가 젖을 물리는데 우리 애기들은 얼마나 쓸쓸했을까라는 생각에 잠도 이룰 수 없었다"며 눈물을 삼켰다.
지금 동범ㆍ동환이는 그 어느 또래들보다 밝고 건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 출산 당시의 걱정과 달리 시력저하 이외에는 큰 증세도 없었다.
이씨는 "얼굴은 모르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분들의 도움으로 아기를 키울 수 있게 돼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서 "주변 분들의 도움과 아기들에게 못했던 것을 갚는 마음으로 쌍둥이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잘 키우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 교보생명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
이른둥이는 출생시 몸무게가 2.5㎏ 이하 혹은 임신 37주 미만에 태어난 아기들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태어나는 아기들의 100명중 8명이 이른둥이로 태어나고 있다.
이른둥이들은 태어난 직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생명의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지만 아직은 충분치 못하다. 이른둥이를 출산한 대다수의 가정이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교보생명의 이른둥이 지원사업은 세상에 조금 먼저 태어난 이른둥이들이 건강을 회복해 소중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이른둥이 출산으로 인해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들의 역경극복까지 돕는다.
교보생명은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 프로그램을 통해 입원치료비, 재입원치료비(출산 후 24개월 이전), 재활치료비(만 6세 이하)를 이른둥이 출산 가정에 지원하고 있다. 현재 협력 병원은 서울대학병원 등 57개.
이른둥이 지원사업에 쓰이는 비용은 매칭펀드로 조성된다. 교보생명 컨설턴트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면 모금액과 동일한 금액을 회사에서 지원하는 방식이다.
매달 5,000여명의 재무컨설턴트들이 모금에 참여해 매월 3,000여만원이 모인다. 이렇게 모인 모금액으로 지금까지 23억원을 지원해 538명 이른둥이들의 귀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이밖에 교보생명은 이른둥이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국립국어원의 후원으로 '미숙아' 대신 '이른둥이'라는 한글 새 이름 불러주기 캠페인을 전개하는 한편, 이른둥이 관련 홈페이지(www.babydasom.org)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교보생명의 사회공헌활동은 일회성의 시혜적 도움이 아니라 지원 대상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사회적으로 나눔을 재생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특징이다. 지속적인 사회적 지원제도(안전망)를 견인해내는 독특한 사회공헌활동이라는 시민단체의 좋은 평가도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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