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할 때 라디오라도 안 틀면 난리 납니데이. 최소한 롯데 아~들(선수들) 면면이나 성적 정도는 꿰고 있어야 택시 분위기가 괜찮은 기라예." 부산의 개인택시 기사 박삼석(43)씨는 최근 DMB TV가 나오는 내비게이션을 장착했다. 15년 택시운전 경력으로 길이야 훤하지만 손님들의 야구중계 시청 편의를 위해서다.
■ 롯데 마법에 걸린 부산
야도(野都) 부산이 홈팀 롯데 자이언츠의 연승 행진으로 연일 들썩이고 있다. 전날에 이어 10일 또 한번의 짜릿한 역전승으로 6연승을 일궈낸 히어로즈와의 홈 경기에는 평일인데도 무려 1만4,224명의 유료관중이 들어 최고조의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10일 현재 자이언츠 성적은 61승47패로, 3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최근 팀 최다인 11연승에 이어 단 한 차례 패한 뒤 다시 6연승을 달리는 괴력을 발휘하며 '공포의 거인구단'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직구장의 함성은 술집, 음식점, 학교, 사무실로 이어져 어디를 가나 화제를 독점한다. 코흘리개부터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전날 롯데 경기 내용을 모르고서는 대화에 낄 수조차 없다. 도시 전체가 '롯데 마법'의 황홀경에 빠진 형국이다.
이에 힘입어 "제발 '가을야구'(준 플레이오프 진출) 좀 하자"던 기대도 이제 한국시리즈 진출, 우승 염원으로까지 업그레이드됐다.
"2위로 7전4선승제로 확대된 플레이오프에 나간 뒤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가장 좋지 않겠어?", "무슨 소리! 롯데 경기를 한 번이라도 더 보려면 3위로 5전3선승제로 치러지는 준 플레이오프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는 게 더 좋지." 시민들은 저마다 희망적인 '가을야구' 전망을 내놓으며 즐거운 상상에 빠져든다.
■ 야구 용광로, 부산 사직구장
롯데 자이언츠의 홈 구장인 사직구장은 지역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다양한 응원 방법으로 거대한 축제 마당이 된 지 오래다.
신문지를 찢어 흔드는 특유의 신문지 응원과 '부산갈매기' 노래, 파도타기 응원은 고전 중의 고전. "아~ 조라"(파울볼 애 줘라), "가~르시아 가르시아 가르시아", "쌔리라"(한 방 쳐라), "(임)마!마!마!"(상대투수 견제 비난) 등을 외치며 2만~3만명의 관중들이 일사불란하게 벌이는 응원전은 타 지역 야구팬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올해 사직구장 관중 수는 18경기를 남겨놓은 현재 121만8,083명을 기록하고 있다. 관중동원 2위인 두산(79만명)과는 엄청난 격차다.
19일부터 열리는 두산과의 3연전에서 한 시즌 최다관중 동원기록(LG 1995년 126만4,762명)도 깰 판이다. 서울 등지에서는 출향 인사들끼리 '갈매기 모임'을 만들어 야구 이야기로 화제의 꽃을 피우고 있다.
극성 갈매기들의 타 지역 원정과 부산 출신들의 구장 행으로 프로야구 전체 관중 수도 크게 늘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롯데 덕에 올 시즌 관중동원이 목표치 500만명을 넘어 역대 최다인 540만명(1995년)을 돌파할 수도 있다"며 "자이언츠팀을 업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 경제파급 효과 1,500억
야구열기로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부산 경제도 꿈틀거리고 있다. 롯데구단, 롯데건설 등 그룹 계열사는 물론 부산은행, 대한항공등 기업의 후원 행렬이 줄을 잇고, 사직구장 내 구단 직영 '자이언츠 샵'은 경기가 있는 휴일 북새통을 이루며 최고 6,000여만원의 매상을 올린다.
사직구장과 인접한 동래구 사직2동 속칭 '먹자골목'은 야구열기에 달뜬 팬들로 연일 불야성이다. 인근 대형마트에는 경기 전 통닭과 족발, 맥주 등 주전부리를 찾는 고객들이 몰려 경기가 있는 날과 없는 날의 매출이 최고 50%까지 차이 난다.
부산발전연구원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롯데 홈경기의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올해 1,5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생산유발효과 1,166억원, 취업유발효과 2,395명을 합치면 매출 100억원의 중소기업을 10개 이상 창출하거나 SM5 자동차 5,000대 이상을 수출한 것과 맞먹는 효과다.
■ 부산이 야구에 열광하는 까닭
부산의 뜨거운 야구열기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걸까. 당연히 롯데의 선전 덕분이다. '8-8-8-8-5-7-7'. 프로야구 출범 이후 84년, 92년 두차례 우승한 롯데가 2001년 이후 4년 연속 꼴찌를 포함해 7년간 받은 초라한 성적표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출신 로이스터 감독 영입에 이어 '투타공수(投打攻守)'가 잘 어울린 올해의 선전은 부산 팬들의 맺힌 한을 일거에 풀어줬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내는가 하면, 지더라도 끝까지 재미있는 경기를 펼쳐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롯데가 부진할 때도 멈추지 않는 열기의 연원은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부산고-경남고, 부산상고(현 개성고)-경남상고(현 寬麗?의 라이벌전으로 대표되는 고교야구의 오랜 전통과 일본에 가까워 일찌감치 프로야구 맛을 봤던 것 등을 밑거름으로 꼽는다.
경남정보대 스포츠과학계열 양승재 교수는 "롯데 선수 대부분은 팬들이 중ㆍ고때부터 지켜본 지역 출신이라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부산=김창배 기자 kimcb@hk.co.kr창원=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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