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이 넘은 정신지체장애인 아들을 홀로 돌보며 정부 보조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김모(80ㆍ마포구 대흥동) 할머니의 집은 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도착한 단칸방은 창문이 없어 대낮에도 어둠에 덮여 있다.
한 푼이라도 아낄 심산에 남이 버린 전구로 불을 밝힌 방은 당뇨병에 백내장 합병증을 앓고 있는 할머니에겐 물 한 잔 맘 편히 떠 마실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런 그가 최근 이웃들에게 빛을 선물 받았다.
마포구 대흥동주민센터와 한국전기안전공사 서울지역본부 직원들이 낡은 형광등을 일일이 교체하고 누전ㆍ화재 위험이 있는 낡은 전기배선도 손 본 것이다.
할머니는 "갑자기 밝아진 집안을 보니 몸 속에 쌓였던 체증이 사라지는 것 같다"며 "아들 얼굴을 또렷이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대흥동 주민센터와 한국전기안전공사 서울지역본부가 '전기재해 없는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관내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빛을 전하고 있다.
동사무소와 공사는 서울 서북부의 대표적 서민밀집지역으로 노후 가옥이 많아 전기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대흥동 일대를 첫 사업지구로 결정했다. 이들은 4월부터 200여 가구의 전기시설을 점검해 배선과 안전차단장치 등을 점검하고 노후한 전등을 교체했다.
사업이 시작되자 일손이 없어 그저 바라만 봐야 했던 노인네들은 빛을 선사 받은 기쁨에 연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연말까지 약 350가구의 모든 전기시설을 점검해 대흥동 전체를 밝은 세상으로 만들 계획이다.
사업에 대한 주민들 호응이 커지자 마포구와 한국전기안전공사 서울지역본부는 상암동 등 대흥동과 비슷한 여건을 가진 관내 타 지역에도 같은 사업을 실시키로 했다.
구는 앞서 '동장 소사장제'를 도입, 각 동마다 실정에 맞는 사업을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말 그대로 동장이 그 지역의 소사(小使)가 돼 직원들과 함께 지역 현안을 직접 발로 뛰며 해결하라는 뜻이다.
신영섭(53) 마포구청장은 "전구 교체같이 아무 것도 아닌 일도 독거 노인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며 "한국전기안전공사가 관내에 위치한 점을 착안해 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구상했다"고 말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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