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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세기의 입자 쇼와 블랙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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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세기의 입자 쇼와 블랙 홀

입력
2008.09.10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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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가 14년의 긴 건설기간 끝에 마침내 가동된다. 전 세계의 과학계가 이 가속기가 만들어낼 '세기의 입자쇼'에 가슴이 설레고 있고, 일반 대중들도 실험의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에 걸쳐 있는 제네바 시에 자리한 유럽 입자핵연구소는 전 세계 8,000명의 과학자가 함께 일하고 있는 거대 기초과학 연구시설이다. 이 연구소가 최근 건설을 완료한 인류 사상 최대 규모의 실험 장치가 '거대강입자가속기'(LHC)이다. 이 실험에서 지하 100m 깊이에 둘레가 27km나 되는 긴 원형 터널 속의 파이프를 따라 두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반대방향으로 가속시켜 정면으로 충돌시킨다. 이때 우주 탄생의 순간인 '빅 뱅'에 가까운 상황이 재현되는 것이다.

양성자들이 충돌하면 1초에 1억 개 가량의 엄청난 수의 입자들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중 '신의 입자'라고 불리우는 힉스 입자는 하루에 한 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마치 '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매우 정교한 입자 검출기를 만들어 이 입자의 탐지에 도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입자가속기에서 블랙 홀도 함께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되어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주에서 태양보다 더 무거운 별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블랙 홀이 생겨나는데, 너무 센 중력 때문에 빛조차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다. 입자가속기에서도 큰 에너지가 매우 짧은 시간에 원자 크기보다 작은 공간에 집적되면 미니 블랙 홀이 탄생할 수도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 미니 블랙 홀이 점점 더 커져 가속기를 삼키고 더 나아가 지구를 삼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미국 하와이에선 "지구 안전성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LHC의 가동 중단을 위한 연방소송이 제기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러한 '인공 블랙홀 생성-지구 멸망'의 시나리오는 괴담 수준으로 '완전한 허구'라고 판단한다.

사실 미니 블랙 홀은 '나노의 나노의 나노초'라는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수십억 년 동안 지구 대기 상에서 이번 실험과 같은 상황이 우주선에 의해 무수히 많이 발생했지만, 지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힉스입자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에 100달러를 걸었다고 한다. 그가 맞다면 새로운 물리이론을 만들어 내거나, 더 큰 에너지의 거대 가속기로 추가 실험이 필요하게 된다. 사실 이번 LHC는 수조 원의 건설 경비가 소요되는 거대 사업으로, 지구 상에서 우리 세대가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거대가속기가 될지도 모른다. 둘레 200km의 슈퍼가속기나 지구 전체를 관통하는 가속기와 같은 일부 제안은 아직 아이디어 수준으로, 더 큰 규모의 실험은 궁극적으로 우주에서 해답을 찾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LHC의 가동은 세계의 과학계가 함께 빚어낸 첨단 기초과학의 한 마당 축제이다. 80여명의 한국의 과학자들과 학생들도 입자검출기를 만들어 실험에 동참하고 있다. 비록 우리 과학자들의 수는 적지만 맹활약하여 '세기의 입자쇼' 무대의 주연으로 '우주탄생의 신비'를 파헤치는 데 큰 공헌을 하기를 기대한다.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ㆍ 아태이론물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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