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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소릉조(小陵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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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소릉조(小陵調)

입력
2008.09.10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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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소릉은 성당 시대의 대시인 두보의 호다. 장안이 안녹산의 반란군에 의해 점령되었을 때 옥에 갇힌 두보가 쓴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고향에선 서리 내리기 전에/ 흰 기러기가 날아왔었지/ 피난 간 아우와 누이들은/ 시방 어디서 살고 있는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이 시의 원제는 <구일(九日)> 로 중양절에 쓰여진 것이다.

‘칠십 년 추일(秋日)에’라는 부제가 붙은 천상병의 시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출옥한 뒤에 쓴 것으로 보인다. 모진 고문 끝에 피폐해진 그가 행려병자가 되어 떠돌다가 두보처럼 명절 대목을 맞았다. 두보는 전란 때문에 고향에 가지 못하지만, 시인은 여비가 없어 가지 못하는 신세다. 천몇백년 전의 전쟁이 돈으로 바뀌었을 뿐,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다. 시인의 천진스런 질문은 여비가 없으면 고향이 아니라 저승도 못갈 것처럼 야단법석인 동시대의 삶을 짐짓 꾸짖고 있는 듯도 하다.

이 시의 묘미는 마지막 구절이다. 곱씹을수록 맛이 나는데 무슨 뜻인지 이거다, 하고 단정지을 수가 없다. 올해도 이런 저런 연유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고향에 가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마지막 구절을 되새김질해보고 싶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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