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최모(42)씨는 울렁증이 생겼다. 곤두박질치는 펀드 때문. 그는 1년 전 "예금보다 훨씬 낫다"는 은행 직원의 권유로 난생처음 주식형펀드에 가입했다. 올 3월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더니 급기야 -20%를 넘어섰다. 은행 거래 20년 만에 처음 원금을 까먹게 된 그는 마이너스 숫자가 더 커지면 화병(火病)이라도 생길 것 같아 이쯤에서 정리하겠노라 맘 먹었다. 최씨는 결국 환매를 택했다.
#시중은행엔 9월 들어 펀드환매 상담(전화 및 방문)이 부쩍 늘었다. 주식 대폭락, 환율 급등의 여파다. 위안을 얻으려고 묻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해지하는 고객도 많다. A은행 직원은 "지금이 바닥이라고 하면 '3월과 7월에도 똑같이 얘기하지 않았느냐. 더는 못 믿겠다'는 바람에 말릴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다시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3월과 7월 떠돌았던 '펀드런'(Fund Runㆍ펀드 대량환매)의 망령이다. 그때처럼 소문만 무성할 뿐 '런(run)'이라 불릴 만큼의 집단적인 환매 사태는 아직 없다.
그러나 이른바 '펀드 누수'는 뚜렷해보인다. 조금씩 새던 구멍이 종국엔 거대한 둑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펀드 누수가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누수가 생긴 곳은 은행이다. 원금보장(예금)에 익숙했던 은행 고객들이 지난해 펀드열풍을 타고 '좀더 수익이 높은 예금'으로 착각, 엉겁결에 가입했던 펀드가 망가지면서 구멍이 커졌다. 오르내리는 증시의 속성을 이해하는 증권사 고객과 달리 보수적인 성향의 은행 고객이 원금손실 규모가 커지자 더는 참지 못하고 펀드를 환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만 벌써 세 번째 우려먹고있는 '주가 바닥론'은 양치기소년의 거짓말로 통한다.
인터넷도 들끓고 있다. 온라인엔 '은행 직원이 해지 막으면 이렇게 대처하라' '적립(50만원)펀드 해지, 80만원 잃었지만 후회 없다. 펀드런 임박' 등 환매를 종용하는듯한 글이 수없이 올라와있다.
펀드관련 통계를 그냥 봐선 이런 징후를 찾을 수 없다. 착시효과 때문이다. "종목과는 상관없는 상장지수펀드(ETF) 등 인덱스펀드에 돈이 몰리고, 계속 유입되는 적립식 자금은 이미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는 거치식 자금의 이탈(환매)을 가린다"(이선엽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는 것이다. 실제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2~4일 국내 주식형펀드는 1,955억원이 증가한 걸로 집계됐지만 ETF를 제외하면 오히려 950억원이 감소했다. 해외 주식형펀드는 이미 7월부터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투신사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9월 들어 나흘연속 '팔자'(3,500억원 순매도)에 나섰고, 프로그램 매매까지 따져 1조원 이상 팔았다는 추산도 있다. 손절매일 가능성이 높지만 펀드 운용주체가 주식을 내다판다는 자체가 개인 투자자에겐 불안 요소다.
일각에선 이미 '펀드런의 위험 구간'에 들어갔다는 평도 나온다. 3월과 7월 펀드런 우려가 나왔을 때, 일부 전문가는 코스피지수 1,480(거치식)과 1,379(적립식)를 마지노선이라고 했다. 현재 지수는 1,400을 겨우 방어하는 수준. 김성주 대우증권 연구원은 "투자심리가 회복되지 않으면 해외 주식형펀드에서 시작된 펀드 누수가 국내 주식형펀드로 번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최근 "펀드런을 예의주시하겠다"(김종창 금융감독원장)고 나섰다.
다만 "극단적인 펀드런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아직은 우세하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4년차에 접어든 국내 펀드 역사는 숱한 고비에도 끄떡없었다"며 "최근 상황이 워낙 안 좋아 둔화됐지만 장기 및 적립식 투자문화가 정착되고있는 만큼 증가세는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넋을 잃은 투자심리는 작은 움직임에 편승해 극단적이고 비이성적인 반응을 하고 공포에 휩싸여 결국 항복하게 된다"(이선엽 연구원)는 지적은 새겨들어야 한다. 누수를 빨리 막지 못하면, 집 전체가 물에 잠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고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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