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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애틋함의 로마' 62세 SF 노장이 로봇에 담아낸 인간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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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애틋함의 로마' 62세 SF 노장이 로봇에 담아낸 인간의 본성

입력
2008.09.08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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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지음/문학과지성사 발행ㆍ310쪽ㆍ1만원

불모와 다름없던 한국 창작 과학소설(SF)에 파천황의 역작으로 호평 받았던 가상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 (1987)를 시작으로, <역사 속의 나그네> <파란 달 아래> <목성 잠언집> <그라운드 제로> 등 일련의 장편 SF를 써온 복거일(62)씨의 첫 단편집이다. 수록작 10편은 2002~2007년 발표됐으며, 이중 7편은 가깝게는 2029년, 멀게는 3028년을 무대로 한 SF다.

책 전반부 4편은 29세기 이후의 미래, 지구인 영토로 복속된 목성의 위성 '개니미드'를 배경 삼는다. <목성 잠언집> <그라운드 제로> 에서 개니미드를 한반도 현실에 대한 치열한 풍자 마당으로 삼았던 복씨는 이번엔 이곳을 무대로 인간의 정체와 운명을 살핀다. 그의 인간 탐구는 인간의 조력자로 만들어져 점차 인성(人性)을 체득해가는 로봇의 이야기를 통해 주로 진행된다.

수록작 '내 몸의 파편들이 흩어진 길을 따라'에서 로봇 예술가는 자신의 탄생 300주년을 기념해 예전 자기 몸을 이뤘던 낡은 부품으로 로봇을 조립해 전시한다. 전시실 이름은 '자아의 재생'. "여기 있는 원래의 물질로 이루어진 로봇과 이 작품을 만든 예술가 로봇 가운데 어느 쪽이 진정한 비에니즈(로봇 이름)일까요?"(58쪽) 인간의 관점에서 이 질문은 "내 몸을 구성한 물질이 끊임없이 바뀌는데, 내가 분명히 느끼는 내 정체성은 어떻게 유지되는가?"(59쪽)로 치환된다.

작가의 운명론이 엿보이는 표제작은 부자(父子) 같은 두 남자 이야기다. 마이크는 젊은 시절 군인으로 큰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았지만, 몇십 년 뒤 그를 전사자를 착각한 개니미드 정부는 참전 당시 스캔(복사)해둔 그의 유전자로 마이키를 만든다.

아버지 같은 애틋한 마음으로 마이크는 자신의 슬픈 과거를 마이키가 되밟지 않길 바라지만, 마이키는 자신의 오리지널(원본)이 겪은 불행에 이끌리고 만다. "우리는 나름으로 애썼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우리가 자신들의 운명을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바치면서 애쓰다가 끝내 실패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운명인 줄 어떻게 알겠는가?"(105쪽)

복씨의 SF는 기발한 사고실험이라기보단, 자신의 견해와 믿음에 대한 담담한 설파로 읽힌다. 사회평론가로서 그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보수주의가 형상화된 구절이 군데군데 있지만, 작품 근저엔 소멸해가는 존재에 대한 애틋함과 인간 본성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있어 감동을 준다.

나이 든 캐릭터들이 타인(특히 젊은 세대)과 사회를 위한 자기 희생을 기껍게 감수하는 모습들은 60대로 접어든 작가의 도량을 보여준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숨은 뜻을 정교하게 해석한 '거부한 자', 한 은행원의 에피소드로 사회 정의와 형평의 문제를 다루는 '정의의 문제' 등 비(非) SF 계열 단편들도 일독할 만하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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