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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갈 곳 없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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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갈 곳 없는 다리

입력
2008.09.08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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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지난 주 민주 공화 양당의 후보가 확정된 미국 대통령선거도 점차 관전의 재미가 커져 가고 있다. 오바마와 매케인의 후보 수락연설에서 보수, 진보 등 두 당의 가치관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도 흥미롭다. 애국심에 대한 생각이 '개인을 넘어선 원대한 대의'(매케인ㆍ공화) 대 '소탈한 꿈에 대한 믿음'(오바마ㆍ민주)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한 쪽이 과거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내세우고 있다면 다른 쪽은 가능성과 꿈의 나라 미국을 강조하고 있다. 공화당의 모델이 레이건, 민주당의 모델이 케네디인 점도 대조적이다.

▦ 그러나 선거에서는 자기 이야기만 할 수 없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 새라 페일린의 여고생 딸이 임신 중이라는 것에 개의치 않던 오바마가 '페일린 때리기'에 나섰다. 오바마는 알래스카 주지사 페일린이 와실라 시장일 당시 의회가 배정한 수백만 달러의 예산을 따내려고 로비스트를 고용한 사실을 지적했다. 필요하면 돈을 끌어다 쓰다가 과도한 예산낭비를 비판하고 있으니 교활하다는 것이다. 그는 "페일린의 언행은 개혁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측이 특히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이른바 '갈 곳 없는 다리(Brigde to nowhere)'다.

▦ 알래스카의 테드 스티븐스 상원의원 등은 2005년, 인구가 50명에 불과한 그라비나 섬과 케치칸 공항을 잇는 연륙교 건설을 위해 연방정부에 2억 여 달러를 요청했다. 페일린은 지난해 9월 "예산낭비의 상징"이라며 이 계획을 취소해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런데 2006년 9월 주지사 선거 때는 "지역 번영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건설캠페인 셔츠를 들고 있는 사진도 있다. 그가 고용한 로비스트가 스티븐스의 참모였던 사실이 확인됐고, 여동생의 전 남편을 주 경찰관에서 해임하려고 경찰청장에 부당한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 원래 명칭이 그라비나 섬다리인 '갈 곳 없는 다리'는 1,280m인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 버금가게 길며 뉴욕 브루클린교보다 더 높게 조성될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매케인이 "의회의 대표적 선심성 예산낭비 사례"라고 비판하자 페일린은 갑자기 반대론자가 됐다는 것이다. 말 바꾸기를 해명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정치인은 원래 물이 없는 곳에 다리를 놓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수시로 말을 바꾸거나 길 내고 다리 세우는 업적에만 치중하는 우리 정치인들, 특히 지자체장들에게 이 공방이 좋은 교훈이 되기 바란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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