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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모란시장 기름골목·남한산성 주먹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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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모란시장 기름골목·남한산성 주먹두부

입력
2008.09.08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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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몸에도 입에도 맛있는 '기름' 이야기를 했었다. 기사를 본 지인들이 서울서 가까운 기름 파는 곳을 여럿 물어왔다. "기름 사러 갈 것이면, 당연히 모란시장이지." 나의 대답.

인구 100만에 육박하는 도시 성남은 남한산성이 있고, 대학교가 있고, 축구팀이 있고, 아트센터가 있다. 거주 인구가 많은 만큼, 없는 것 없는 도시에 큰 규모의 기름 도매시장이 있는 것. 물가가 부쩍 오른 추석, 재래시장의 북적거림으로 아쉬움을 달래보고 싶다면 성남시에 다녀오자.

■ 모란시장 기름골목

모란시장을 보신용 동물들이 거래되는 곳으로만 떠올린다면 선입견을 버리자. 성남시 큰 살림의 중심에 서 있는 역사 오랜 시장이다. 특별히 5일장이 서는 날을 골라 가면, 물건 자체가 많아서 좋지만, 장이 서지 않는 날에도 한적한 맛으로 좋다. 특히 장바구니 들고 슬렁슬렁 걷다가 기름골목으로 돌아들면, 그 향기로 단박에 행복해진다.

참기름과 들기름에 있어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매시장으로 꼽힌다는데, 과연 골목에 자욱한 깨 볶는 냄새가 보통이 아니다. 국산 농산물과 중국산 농산물이 한 소쿠리에서 팔리는 요즘 세상, 기름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모란시장의 사정은 어떨까?

"이 골목에서 중국산 국산을 안 가려 팔았다가는 큰일 나지. 우리 골목의 이미지를 한번 망치면 회복이 어렵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거든."

화성기름집(031-754-1285) 장완식 대표님의 말씀. 참기름상인연합으로 묶어 관리하는 총 마흔 여덟 곳의 기름은 그 신용이 생명이라고 강조하신다. 국산 참기름 가격은 소주 병 하나 분량이 1만6,000원 선이다.

가게마다 일이천 원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이 밖에 들기름은 물론, 국산 고추씨로 만든 고추기름, 피부 미용에 좋은 살구씨 기름, '잇꽃'이라 불리는 홍화의 씨로 만든 홍화씨 기름, 피마자기름 등이 고루 갖춰져 있다.

■ 남한산성 주먹두부

남한산성은 산 좋아하는 내가 아끼는 곳이다. 거창하게 등산 장비를 챙기고 나서지 않아도, 신발만 갖춰 신으면 성벽 따라 걷는 길이 좋기만 하다. 삼국시대부터 우리와 함께 해 온 곳이라 성벽에 깃든 역사와 설화가 넘쳐난다.

조용히 걸으면 도시생활에 지쳐 괄괄했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제대로 걸을 요량이면 서너 시간이 걸리는 7.7km 코스가 있지만, 가족단위로 걷기에는 2.7km짜리 한 시간 코스가 적당하다.

걷고 내려와서 먹으면, 물 한잔도 달지만 꼭 챙겼으면 하는 메뉴는 두부다.

옛날, 정약용 선생은 "달고 텁텁하고 맵고 짠 음식은 비위에 알맞기는 하지만, 제대로 다루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무미'한 것이 낫다"고, '담박무미(澹泊無味)'한 선인들의 시 맛을 음식에 비유하시었다. 그 담박무미한 맛, 입에 착착 휘감기기보다는 눈에 띄지는 않지만 뭉근한 맛을 두부만큼 제대로 보여주는 예가 또 있을까?

특히 3대에 걸쳐 같은 방법으로, 같은 맛의 두부를 만들고 있는 오복손두부(031-746-3567)의 '주먹두부'는 담박함의 극치다. 우석 그 모양부터 다른데, 두부 판을 쓰지 않고 뜨거운 순두부 상태에서 건져 하얀 천에 감싸 손으로 빚어낸다. 그 모양이 오막하게 쥐고 있는 투박한 주먹 같다. 일일이 손으로 빚어내는 정성 덕인지 그 맛이 유난히 따뜻하다.

속상한 일이 있다가 이런 음식을 먹으면 눈물이 울컥 맺힐지 모른다. 누가 뭐래도 늘 내 편을 들어주시는 할머니 품 같은 온기가 뱃속으로, 마음으로 퍼진다. 함께 나오는 김치와 각종 산채에 외할머니 맛을 닮은 짠지를 곁들여 먹다보면 두부 한 접시가 둘이 먹기에 빠듯하다.

두부는 소화가 수월한 대표적인 메뉴. 그리고 영양에 비해 칼로리가 낮기로 유명한 음식이기도 하다. 여름 내 지친 위장을 달래고, 말도 살이 찐다는 가을 입맛을 잡고 싶다면 두부를 먹고, 산성을 걷고, 기름 한 병 사오는 주말 소풍을 떠나보자.

박재은ㆍ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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