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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양반의 사생활' "제사에도 안오고…" 양반들 유교질서 붕괴 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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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양반의 사생활' "제사에도 안오고…" 양반들 유교질서 붕괴 한탄

입력
2008.09.08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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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휘 지음/푸른역사 발행ㆍ359쪽ㆍ1만5,900원

"어제 편지는 보았느냐? …(중략)…늘 빌리고 싶었으나 못하다가, 작년 비로소 그 주인을 만나 빌려 보니 과연 좋더라. 다만 한 질 베껴 두고 싶었으나 소주(小註)와 그림이 베끼기 어려워 그러질 못했다. 너는 모름지기 이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한다."

19세기 조선의 전형적인 선비 조병덕(趙秉悳ㆍ1800~1870)은 평생을 거유(巨儒)들의 가르침을 좇아 빈한하게 살던 사람이다. 그는 엿새에 한번 꼴로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로 못다한 일들을 대신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유려하면서도 단아한 절제미로, 권문세가들도 넘보지 못할 향기를 발하고 있었다. <숙재집(肅齋集)> 이라는 문집을 남길 정도였다.

책은 그가 대략 엿새에 한번 꼴로 아들 장희(章熙)에게 썼던 편지 1,700여통의 편지글에서 조선 시대 양반 계급의 일상과 심성을 되살려 낸다. "며칠 동안 무사한가? 나는 어제 산소 14위(位)와 묘사(廟祀) 3곳의 가을 제사를 아침부터 해거름까지 단지 너의 형과 둘이서 지냈단다." 나머지 두 아들은 제사에 불참했던 것이다. 투철한 유교 사회에서 이런 일이 어찌 벌어질 수 있었을까?

19세기 중반 무렵에는 투철한 가부장적 질서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는 강력한 정황이다. 또 장조카 형제가 적서차별을 하지 않는 행태를 놓고 분개하고 있는 대목 역시 유사한 증거다. 잇단 민란으로 신분제가 흔들리면서 꼬장꼬장한 선비가 삼킨 분루도 보인다. "이제부터는 모름지기 가슴속에서 '양반'이라는 두 글자를 지우고 오직 의리와 시비만을 따지고 밝히도록 하라."

부모 봉양의 도 역시 일그러지고 있었다. 고부간의 불화 등 집안의 갈등에 시달리다 몸을 의탁할 곳을 잃어버린 그는 " 정착할 곳 없는 내 신세는 죽어서 떠도는 백골의 신세보다 더하다"며 한탄한다.

곰팡내 나는 고서 더미에 묻혀 임자만을 찾던 이 기록에 볕을 쏘인 사람은 사학자 하영휘(54) 박사다. 1898년부터 안양의 고서점인 아단문고에서 고문서를 탐구해 오다 이 글뭉치를 발견한 그는 2004년 이를 근거로 조선 후기 사회사에 대한 논문을 작성, 단행본으로서의 준비 작업을 마친 셈이다. 이번에 책으로 거듭나면서 일반인들도 쉬 이해할 수 있게 환골탈태했다.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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