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올림픽열기 대단했었죠?? 저 번 주에 친정을 다녀왔는데 마침 태권도와 야구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어요. 거실에 앉아 경기를 기다리는데 아버지가 신랑에게 "안 서방. 이거 한번 보게"하시며 휴대폰을 건네시는 거예요. 순간 엄마, 눈꼬리를 올리며 "아이구, 내가 너거 아부지 땜에 죽겠다"하시는 겁니다. 휴대폰엔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 따는 장면들이 동영상, 사진으로 다 담겨 있었어요. 아버지는 그걸 수시로 보시며 감동을 재현하고 계셨던 겁니다.
그때부터 엄마 하소연이 시작됐습니다. "너거 아부지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아나? 아침에 일어나서 산에 갔다 와서는 아침 묵고, 커피한잔 하고, 내내 신문 읽고 텔레비전 보다가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그 낙으로 산다. 올림픽 끝나모 우짤끼고? 아도 아이고…." 잔소리는 일장 연설로 이어집니다. "누가 돈을 주나, 상을 주나? 쓸 데도 없는 거에 밧데리만 많이 들고…. 그 시간에 돈을 벌러 가던가, 아님 집안일이나 도와주던가. 제발 너거 아부지 좀 모시고 가라. 내 전 재산을 다 주께. 제발 부탁이다."
하지만 아버지도 지지 않으십니다. "그런 거 두고두고 보믄 얼마나 좋노? 너거 엄마는 감정이라고는 병아리 눈물만큼도 없다. 을매나 좋노." 그때 마침 엄마 휴대폰이 울리자 아버지는 "누군지 몰라도 지금 전화하는 사람이 날 살렸다. 아이고 고마버라. 그 사람 복 받을끼다"하십니다. 9회 말! 드디어 금메달 확정!!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엄청난 함성이 터졌습니다. 순간 아버지 안방으로 가시더니 한참을 안 나오시는 거예요. 역시 엄마 몰래 TV 앞에 딱 붙어서 휴대폰 사진을 찍고 계셨어요. "너거 엄마 어디 있노?? 들키모 나는 죽는다."
아버진 환갑이 지나셨지만 열정도 감성도 저희보다 더 순수하고 뜨겁고 따뜻하십니다. 어려운 시절 9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물론 저희 엄마두 마찬가지지요. 이렇게 말다툼 하실 때마다 자식들이 "진짜 두 분은 천생연분이라예"하면 아버지는 "맞제, 내가 봐도 천생연분이다"하시는데, 엄마는 "미버(미워) 죽겠는데, 천생연분이 뭔 말이고?"하신다. 그래도 우린 두 분이 건강하셔서 이런 모습들 오래 많이 보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며칠 전 아버지께 전화해 "아버지, 올림픽도 끝났는데, 지금 뭐 하십니꺼?"하고 물었더니 역시 아버지, "휴대폰으로 금메달 딴 거 보고 있다"하십니다. 친정가면 신문 스크랩한 거 잔뜩 들고 나오셔서는 "내가 외우지는 못하겠고, 신문보고 재미있는 얘기 해주께" 하시며 열심히 이야기를 하십니다. 정말로 작은 행복이 뭔지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 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엄마랑 함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경남 진해시 자은동 - 이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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