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매케인 미 공화당 대선후보는 4일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통해 11월 본선에서 맞붙게 될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뿐 아니라 조지 W 부시 현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오바마 후보와 분명하게 각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시 정부와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으면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판단을 연설 자락에 깔았다.
후보 지명을 수락하고 가족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시하면서 연설을 시작한 매케인 후보는 곧바로 워싱턴의 낡은 정치를 질타했다. “당의 자존심과 원칙을 복원하기 위해 싸우겠다” “우리는 워싱턴을 변화시키기 위해 선출됐다” “일부 공화당원들이 부패의 유혹에 넘어갈 때 미국민의 신뢰도 사라졌다”. 그는 속사포처럼 현 정부와 공화당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 때마다 대회장에서는 우레와 같은 환호가 터져 마치 민주당 전당대회장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링컨, 루스벨트, 레이건의 당으로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그러기 위해“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를 먼저 걸고 넘어진 매케인 후보의 의도는 분명했다. 민주당이 주장하듯 ‘매케인 정부=부시 3기’라는 등식은 아예 성립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30%대로 최악의 지지도를 기록하고 있는 부시 정부의 부정적 유산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부시 대통령과 동반 추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사실 매케인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전선은‘오바마’뿐이 아니다.‘부시’의 그늘을 효과적으로 거두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매케인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딜레마였다. 신뢰를 상실한 부시 정부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고민이 있지만, 보수세력 내에서 여전히 70% 이상의 지지를 얻고 있는 부시 대통령과 완전히 등을 지기도 어렵다. 당내 이단아로 불리며 여전히 골수당원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매케인 후보는 오바마를 공격하는데도 오바마의 무기를 사용했다. 바로 ‘변화’의 외침이었다. 그는 상대방의 최대 무기를 연설의 전면에 끌어옴으로써 ‘변화’의 메시지가 오바마의 전유물이 아님을 미국의 유권자들에게 속삭이려 했다. 나아가 오바마의 ‘변화’는 내용 없는 공허한 외침인 반면 자신의 변화는 ‘기존정치의 개혁’, ‘국민을 위한 봉사’임을 주장했다. 그는“이 나라를 다시 움직이게 할 기록과 상처가 오바마에게는 없다”고 외침으로써 오바마가 미국의 변화에 무임 승차하려는 정치가일 수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매케인의 ‘변화’는 오바마의 일천한 정치경력을 부각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갖는다.
매케인 후보의 진면목은 베트남전 포로 경력 등 자신의 군경력과 안보분야에서 드러났다. 매케인 후보는 베트남전에서 해군조종사로 활약하다 추락해 포로로 전락한 과정과 어린 시절 겪은 진주만 폭격, 전쟁터로 떠난 아버지가 4년 넘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일, 종전 후 귀향한 조부가 이듬해 돌아가신 사실 등을 일일이 열거하며 자신만이 미국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적임자임을 과시했다. 매케인이 장내를 숙연하게 하면서 자신의 개인사를 길게 거론한 것은 안보가 오바마 후보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는 것을 의식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란 핵문제, 러시아의 부흥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단호했다. 특히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략”했다고 한 부분은 대외관계에서 매케인 정부가 강력한 힘의 정치를 펼칠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경제에 대한 자신감도 빠뜨리지 않았다. 연설의 상당부분이 경제 부분에 할애됐다. 스스로 ‘경제를 모른다’고 자인했던 그였다. 그러나 감세와 원자력개발, 에너지 자립을 강조한 그의 경제정책은 이미 오바마 후보의 경제공약에 비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세인트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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