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몸져누운 어머니의 예순여섯 생신날
고향에 가 소변을 받아드리다 보았네
한때 무성한 숲이었을 음부
더운 이슬 고인 밤 풀여치들의
사랑이 농익어 달 부풀던 그곳에
황토먼지 날리는 된비알이 있었네
비탈진 밭에서 젊음을 혹사시킨
산간 마을 여인의 성기는 비탈을 닮아간다는,
세간 속설이 내 마음에 천둥 소낙비 뿌려
어머니 몸을 닦아드리다 온통 내가 젖는데
겅성드뭇한 산비알
열매가 꽃으로 씨앗으로 흙으로
되돌아가는 소슬한 평화를 보았네
부끄러워 무릎을 끙, 세우는
어머니의 비알밭은 어린 여자아이의
밋밋하고 앳된 잠지를 닮아 있었네
돌아갈 채비를 끝내고 있었네
병든 어버이의 소변을 받고 기저귀를 채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슬 고인 밤 풀여치들의 사랑이 농익어 달 부풀던 그곳”이 황토 바람 이는 산비탈이 되어 드러났을 때의 슬픔을.
‘비알’이란 정감어린 방언을 쓴 것을 보니 강원도 산간지대 어디인가 보다. 화전민 아낙이라도 되는지 한평생 비탈을 매며 살아온 어머니는 이제 세간 속설대로 거칠디 거친 산비탈이 되어 몸져 누워 있다.
그 앞에서 누가 천둥 소낙비 뿌리는 통곡을 하지 않겠는가. 더 이상 젖을 물릴 수 없는 이 산비탈은 그러나,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있는 몸이다.
“열매가 꽃으로 씨앗으로 흙으로” 돌아가는 더 큰 생명의 질서 속에서 보자면 ‘병’도 ‘먼지’도 생명 활동의 한 현상! 이같은 각성이 간신히 통곡을 진정시켜주었을 것이다.
어린날 어머니가 자다 깬 나를 데리고 소변을 보러갔듯이 이제는 내가 어머니의 소변을 받아드린다. 오줌은 어미와 나를 잇는 뜨거운 끈이요, 우리 몸을 돌고 돌아 비탈진 생애를 적시며 수수만년을 흘러가는 강물이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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