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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에 은폐되고 누락된 '민중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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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에 은폐되고 누락된 '민중의 목소리'

입력
2008.09.08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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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로 살은 거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말도 잘 모르고. 말도 잘 못하죠, 어설프죠. 또 그냥 영어도 못하죠. 그러니까 엉터리로 살은 거에요."

미군을 상대로 한 매매춘을 그만둔 뒤 식모살이, 매매춘 여성들의 삯빨래와 방 청소 등을 통해 마련한 전세방 한 칸에서 살고 있는 '기지촌 여성'출신 윤모씨의 회고다. 그녀의 인생을 '엉터리'로 만든 것은 누구일까. 누가 그녀의 인생을 '엉터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 현대사에 있어 민중의 고통은 '불가피한 것'이었으며 경제성장률, 수출입액 같은 국가의 공식 통계에서 이들의 경험은 은폐되고 누락되기 일쑤였다. 이 같은 역사해석에 반발, 민중의 역사를 구술사(oral history)를 통해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계간 <역사비평> 과 <문화과학> 은 정부수립 60년을 맞아 스스로를 표현할 수 없었던, 혹은 침묵을 강요당했던 민중의 목소리에 주목, 현대사를 재구성한다.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은 '박정희 시기 근대화 속에서 잊혀진 이야기들'(<역사비평> )에서 기지촌 여성, 베트남전 참전병, 파독노동자, 도시하층민의 목소리를 통해 민중사의 복원을 꾀한다.

가령 "자기 영달을 위해 작전을 하는 장교들과 실제 소모품보다 못한 졸병으로 총을 쏘고 전쟁을 한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저들이 어떻게 알아요. 상상도 안할 거에요. 우리가 겪은 고통을…"이라고 울부짖는 베트남 참전병의 목소리는 오직 '경제발전을 위한 애국자'로 명명하는 국가의 공식기억 속에서 부인된다.

1963~78년 7,900여명에 달했던 파독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묻혀있다. 이들은 작업장에서는 버터 바른빵, 사과, 오렌지만 들고 입갱(入坑)해 16시간의 노동을 감수해야 했으며, 숙소로 돌아와서는 툭하면 경찰을 부르겠다는 독일인 집주인의 협박을 당해야 했지만 여전히 '경제성장의 숨은 주역'으로, 이들의 고통은 '어쩔 수 없는 에피소드'로만 기억되고 있다.

사회에서는 '민족을 더럽히는 존재'로 국가에서는 역설적으로 '애국자이자 산업전사'로 호명됐던 기지촌 여성들, '청소되고 격리돼야 할 주체'로만 취급당했던 도시하층민의 목소리 역시 은폐되고 부인돼왔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산가족의 섬, 한반도' 라는 글(<문화과학> )에서 한국전쟁과 분단이 낳은 수많은 이산가족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가족상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우리사회가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공유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정황상 '자진월북'이지만 '납북'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던 이들, 군경에 의해 '소개(疏開)' 됐으나 '자진월남'이라고 말해야 하는 이들, 혹은 아예 전쟁에 대한 기억을 "생각이 안 난다"고 회피하는 이산가족들의 내면화된 상처치유는 우리사회가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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