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1년전. 1997년의 9월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였다. 연초 한보로부터 시작된 대기업 연쇄도산의 소용돌이는 마침내 기아차까지 삼켜버렸다. 금융가에선 '다음엔 ○○그룹이 쓰러진다더라'는 살생부가 나돌았고, 시중의 돈줄은 극단적인 경화증상을 빚었다.
나라밖에선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출몰한 금융ㆍ외환위기가 한반도를 향해 북동진(北東進)중이었다. 국내기업과 금융기관의 해외 차입은 봉쇄됐고, 국내의 외화는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위기의 전조였다. 우리 국민들만 모르고 있었을 뿐. 정부는 "우리의 펀더멘털은 강하다"는 말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다.
한국경제는 2008년의 9월도 '위기설'과 함께 시작했다. 9월 위기설은 지난 주초 외환시장을 초토화시키더니, 주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점차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금주엔 9~11일이 '심판의 날'이다. 우리나라 신뢰도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외평채 발행, 금리향방을 가릴 금융통화위원회, 4가지 파생상품만기가 겹치는 쿼드러플 위칭데이가 몰려 있는데, 그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외국인보유채권의 만기일인 10일이다.
걱정했던 9월 위기설은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들이 채권을 모두 털고 나갈 리도 없고, 국내 외화유동성이 당장 거덜날 리도 없다. "곧 위기설의 허상을 알게 될 것"이란 정부 당국자들의 장담도 이번만은 11년전의 펀더멘털론과는 분명 달리 들린다.
하지만 정부는 알 것이다. 10일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하루 아침에 신새벽이 열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설령 루머나 음모라 해도 한번 생성된 위기설은 좀처럼 소멸되지 않고, 시장에서 스스로 핵분열과 확대재생산의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을.
특히 현 경제팀을 이끄는 '투 톱'인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과 박병원 경제수석은 이런 위기의 생리에 누구보다 밝은 인물들이다. 강 장관은 환란 때 재정경제원 차관이었고, 박 수석은 당시 강경식 재경원장관의 비서실장이었다. 11년전 한국경제의 붕괴를 한복판에서 지켜봤던 만큼, 위기여부를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으리라.
그런 만큼 강 장관과 박 수석은 정부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고민의 주제는 '위기설과 정부역할의 상관관계'다. 10일 그 자체보다, 이후의 정부대응이 더욱 주목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성철 경제부 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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