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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27> 술-불꽃으로 타오르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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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27> 술-불꽃으로 타오르는 물

입력
2008.09.08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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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사랑의 촉진제다. 그것은 서먹한 남녀 사이의 스스럼을 없애주고, 분위기를 낭만적으로 만든다. 알코올이 뇌를 자극해서만이 아니라, 술자리 자체가 낭만적이다. 수줍은 선남선녀들에게, 술(자리)은 사랑의 묘약이다.

되풀이(곧이곧대로 얘기하자면 '자기표절')는 글쟁이가 피해야 할 악덕 가운데 두드러진 것이다. 이따금 이 악덕을 저질러온 나는, 이태 전에 낸 책 <말들의 풍경> 서문에서 그 짓을 반성하며, 앞으로 이런 지적 불성실을 경계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런데 술 이야기를 하자니, 바로 그 <말들의 풍경> 에서 내가 술에 대해 끼적여 놓은 것을 글 앞에 얹고 싶은 욕망이 파들거린다. 그 몇 마디가 내 '술 이미지'의 고갱이를 들추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 말을 하지 않고선, 술 얘기를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다.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자기표절을 눈감아주시라. <말들의 풍경> 에서, 나는 '술'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 말이 아름답게 들리는 것인지 이 말이 가리키는 물질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술'이라는 말만큼 술처럼 들리는 말이, 그 물리적 화학적 성질과 풍속적 규범을 슬그머니 암시하는 말이 내가 아는 외국어에는 없다. '술'의 마지막 소리인 설측음 /ㄹ/은 술의 물리적 성질을, 다시 말해 액체로서의 유동성, 그 흐름의 본성을 드러낸다.

한편 그 첫 소리인 치마찰음 /ㅅ/은 술이 예컨대 증류수 같은 무미 무취 무색의 액체가 아니라 빛깔과 향기와 맛을 지닌 마법의 물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그 두 자음을 이어주는 원순 후설모음 /ㅜ/는 술이, 예컨대 모음 /ㅓ/가 연상시켰을 수도 있듯 내뱉는 액체가 아니라 들이마시는 액체라는 점을, 또 마시되 예컨대 모음 /ㅏ/가 연상시켰을 수도 있듯 폭음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 있게 느릿느릿 마시는 액체라는 점을 내비친다.

그러므로 술은 뇌세포에 상처를 낼 정도로, 또는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청각이 흐릿해져 서로 악다구니를 써대거나, 과장된, 또는 가장된 애상의 몸짓이 펄럭일 정도로 마실 일이 아니다. 이 말을 해 놓고 보니 쑥스럽긴 하다. 나 자신 '술꾼'의 직업윤리를 잘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은 내가 두 해 전 처음 한 말이 아니다. '술'이라는 말을 두고 얄팍한 음성학적 상상력을 펼친 이 단장(斷章)을 처음 쓴 건 스무 해 전이다. 그 뒤로 나는 술에 대해 글을 쓸 때면 종종 이 단장을 조금씩 고쳐 끌어왔다. 내 기억이 옳다면, 이번이 무려 네 번째다. '다섯 번째' 쓰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다짐한다.

'술' 소리도 성질은 마침맞은 말

위 단장(따옴표에 담아 '자기인용'이라는 걸 또렷이 하고 보니 '자기표절'을 했다는 죄책감이 한결 줄어든다)에서, 나는 '술'이라는 말만큼 술처럼 들리는 말이 내가 아는 외국어(죄다 유럽어다)에는 없다고 썼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말 '술'에 딱 대응하는 말도 내가 아는 외국어에는 없다.

그 외국어 화자들은 한국인들이 "술 마시자"고 할 상황에선 그냥 "마시자"고 말하는 것 같다. 목적어를 밝힐 때도 '술'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기보다, 맥주면 맥주, 와인이면 와인, 위스키면 위스키라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더 나아가 하이네켄이라거나 그라브라거나 밸런타인처럼 아예 상표까지 말하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말 '술'에 대응하는 프랑스어를 굳이 찾자면 '알콜'(alcool)이나 '부아송 알콜리크'(boisson alcoolique: 알코올음료)일 텐데, 이 말들에선 '술'에서와 같은 정겨움이 배어나오지 않는다.

내가 프랑스어 '알콜'의 어감에 둔해 생긴 일이겠지만, 기분을 달뜨게 하는 액체를 가리키는 이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술자리보다 화학실험실을 먼저 떠올린다. 영어 '리커'(liquor) 역시 '술'만큼 정겹지 않다. 이 말은 술꾼의 입보다 약제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알콜·리커… 화학적 어감이 선뜻

'술'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사케'라고 들었다. 이 말은 우리말 '술'처럼, 다시 말해 '알콜'이나 '리커'와 달리, 술집이나 식당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일상어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일식당에서는 '사케 한 잔 주세요'라고 주문할 수 있는 데 비해, 한식당에서는 '술 한 잔 주세요'라고 주문할 수가 없다.

일식당 종업원은 손님이 일본식 청주를 원하는 것이라 즉각 이해할 테지만, 한식당 종업원은 손님이 도대체 어떤 술을 바라는지 알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사케'는 어휘의 위계층위(register)가 '술'과 엇비슷하지만, 의미 영역이 '술'과 고스란히 포개지지 않는다. '사케'를 '술'의 의미로 넓게 쓰는 일이 더러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술'처럼 닳고 닳은 일상어이면서, 알콜 음료 전체를 한데 묶는 외국어 낱말을 나는 아직 접해보지 못했다. 입 밖에 내기 꺼림칙한 속어들을 제외하고는.

술과 사랑을 나란히 늘어놓은 시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음주가> (A Drinking Song)라는 표제를 달고 예이츠의 손에서 나왔다. "술은 입으로 흘러들고/ 사랑은 눈으로 흘러든다/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알게 될 진실은 그것 뿐/ 나는 술잔을 들어 입에 대고/ 그대를 바라보며 한숨짓는다."

여기서 '술'은 포도주다. 그 첫 행이 "Wine comes in at the mouth"인 것이다. 어니스트 다우슨이라는 영국인 역시 "술과 여자와 노래/ 세 가지가 우리 길을 장식하네" 어쩌구 하는 낭만적 시를 썼지만, 거기서도 '술'이라 옮긴 영어 낱말은 'wine'이다. 유럽 사람들에겐 와인이 다른 술보다 그 유래가 깊어 알코올음료 전체를 대표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시인들이 노래한 것은 '술'이 아니라 '와인'이다.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시 <미라보 다리> 를 수록한 시집에 <알콜> 이라는 표제를 붙였지만, 유럽 문학작품에서 이렇게 술 일반(특정한 술이 아니라)이 호명되는 일은 드물다.

과학철학자이자 시학자였던 가스통 바슐라르는 <불의 정신분석> 이라는 책에서, 술(중에서도 주로 브랜디처럼 독한 증류주)을 '불의 물'이라 불렀다. 바슐라르가 보기에, 술은 조그만 불꽃으로 타오르는 물이다.

술은 생명과 불의 범벅이다. 불꽃이 알코올 위를 달리고, 원시의 '불의 물'이 빛나며, 타는 화염이 그것을 화려하게 장식할 때, 우리는 그것을 마셔버린다. 바슐라르는 이 책에서 또, 알코올과 말 사이의 정분을 강조했다. 술은 언어를 태우며, 어휘를 가멸게 하고 문장의 차꼬를 풀어준다는 것이다.

돌아간 문학비평가 김현은, 분명히 이 책 이 대목에서 생각의 실마리를 끌어내, 술과 사랑의 언어를 아름다운 수필에 담았다. "마음 맞는 친구하고, 막걸리든 소주든 맥주든 술을 앞에 놓고 마주앉으면, 내 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리고 사실은 나 자신도 내 속에서 잠자고 있는 줄 몰랐던 말들이 줄줄, 아니 술술 나올 준비를 한다. (중략)

복지느러미를 넣은 정종에 불을 붙여본 이후에 나는 '불꽃이 조그마한 소리를 내며 알코올 표면으로 내려가는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 불타는 술이 위 속으로 들어가면 말의 성감대를 움직여 사람의 입을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술 마신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래서 아름답다. 그것은 조그마한 소리를 내는 불꽃의 말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것(술: 인용자)은 말하는 사람의 혀를 불태운다. 술 마시며 하는 이야기는 불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 중에서도 사랑의 이야기가 가장 아름답다. 사랑이야말로 불 중의 불이기 때문이다."(<불꽃의 말> ).

내 속에 잠자고 있던 말들이 나와

사랑은 대중가요의 가장 흔한 주제다. 술은 사랑의 말을 부추기는 '불의 물'이므로, 술을 노래하는 대중가요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 내게 대뜸 떠오르는 것은 70년대에 이장희씨가 만들고 부른 <한 잔의 추억> 이다.

이장희씨 노래치고는 썩 뛰어나다 할 수 없는 작품이지만, 내 세대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이 노래를 곧잘 불렀다. 가사 중의 "취한 눈 크게 뜨고 바라보면은/ 반쯤 찬 술잔위에 어리는 얼굴"이라는 대목은 그 시절의 한국 대중가요 가사에서 보기 힘들었던 멋부리기다.

내가 썼던 글을 포함해 이 글 저 글을 거듭 인용하다 보니, 어느 새 글을 마칠 때가 되었다. 속된 말로 이런 걸 '날로 먹는다'고 하던가? 앞에서 인용한 수필에서 김현도 "술자리의 분위기를 지워버린 나의 삶을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썼거니와, 그 글을 썼을 때의 김현보다 나이를 열두어 살 더 먹은 나도 술 없는 삶을 상상하기 싫다.

연애할 나이를 넘겨버린 나는 혼자서, 또는 여자친구들(그저 '여성인 친구들'이란 뜻이다)과 술을 마시며, 불꽃의 말을 나누며, 연애의 판타지를 즐긴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일러스트 신동준기자 dj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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