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부르는 찬란한 색이 있으니 정염의 꽃무릇과 순백의 메밀꽃이 그것이다.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가을, 여름을 체험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단풍의 묘미를 맛보기엔 이른 시절이다. 이즈음엔 가을 서정 가득 담긴 꽃구경이 제격이다. 화사한 자태로 초가을을 알리는 전령사로는 단연 꽃무릇과 메밀꽃을 들 수 있다.
■ 가을을 붉게 피워내는 꽃무릇
이파리 하나 없는 기다란 연녹색 꽃대 위에 가는 꽃잎과 실타래 같은 수술이 서로를 섞어 붉은 화관을 이루는 꽃무릇. 가녀린 꽃대 하나에 의지해 툭툭 터져 갈라진 꽃송이는 가볍게 이는 바람에도 흔들리며 '슬픔의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꽃무릇은 한 뿌리이면서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화엽불상견 상사초(花葉不相見 想思草)'의 아련함으로 회자되는 꽃이다.
전남 함평의 불갑산 자락 용천사 입구. 빨간 가을을 피워내는 꽃무릇이 무리를 지어 부도밭 주위로, 낮은 토담 옆으로 붉은 융단을 깔아놓는다. 산 너머 영광군 지역의 불갑사에도 용천사 못지않게 크고 아름다운 꽃무릇 군락이 있다.
보통은 용천사를 들렀다 차로 20분 정도 돌아가 불갑사를 찾아가지만 진짜 두 곳의 꽃무릇을 만끽하는 방법은 용천사에서 용봉, 구수재, 동백골로 해서 불갑사까지 3.8km 되는 오솔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야생의 꽃무릇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용천사 경내를 지나 시작된 숲길의 초반은 오르막의 경사가 가파르다. 한 10분쯤 힘든 걸음을 옮기면 능선이다. 이제부터는 동백골의 아름다운 계곡을 끼고 편안히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1시간여 숲길 여정을 마치면 불갑사 직전에 작은 저수지와 만난다. 아담한 벤치가 군데군데 놓여진 산책로가 꽃무릇 군락을 끼고 잘 만들어져 있다. 꽃무릇 군락과 저수지가 빚어내는 호젓한 풍경이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봄에 붉은 동백꽃으로 유명한 고창 선운사도 가을이면 붉은 꽃무릇으로 장관을 이룬다. 입구 매표소 앞에 드문드문 피어있는 꽃무릇은 매표소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계곡 주변에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듯 피어있다.
극락교를 건너 도솔암 쪽으로 가다보면 길가에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어있어 보다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선운산(355m)은 숲이 울창하고 기암괴석이 많은데 특히 진흥굴, 도솔암, 용문굴, 낙조대 등 절경들을 품고 있다. 불갑산과 선운사의 꽃무릇은 9월 중순 이후 만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 솜구름 깔린 듯 환한 메밀밭
'봉평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막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에서). 메밀꽃>
해마다 9월 초가 되면 강원 평창군 봉평면 일대는 한없이 펼쳐진 메밀밭으로 '숨이 막힐 지경'에 빠져든다. 30만㎡ 이상의 메밀밭이다.
봉평의 하얀 들녘에서 어른들은 소설의 표현대로 '소금을 뿌린 듯'에 감정을 이입하고, 아이들은 꽃의 생김새를 보고 '팝콘을 닮았다'며 저마다의 느낌을 기억에 담는다.
봉평메밀꽃축제인 '효석문화제'가 6일 봉평중 학생들의 사물놀이를 시작으로 15일까지 열린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자 발표 및 시상식이 진행되고 메밀 타작소리, 진부 목도소리 등 민속공연과 일본 토가촌 민속공연, 메밀꽃영상물전, '메밀꽃 필 무렵' 영화 상영도 열린다.
축제장에선 소설 속의 메밀꽃밭을 따라 걷는 문학체험이 진행되고, 흥정천 개울에서는 돌다리와 나무다리, 섶다리를 건너며 옛 추억에 빠져들 수 있다. 윷놀이, 굴렁쇠, 비석치기 등 전통 민속놀이와 함께 도리깨질, 지게 지기, 통나무 빨리 자르기, 떡치기 등 체험마당도 마련됐다. 직접 메밀국수와 메밀부침을 만들어볼 수 있는 메밀음식 체험장도 준비됐다.
거대한 메밀꽃 바다는 전북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www.borinara.co.kr)에서도 만끽할 수 있다. 봄에는 청보리로 넘실대던 드넓은 벌판이 가을엔 하얀 메밀꽃으로 뒤덮인다. 주변 농가까지 합쳐 70만㎡ 정도 되는 전국 최대 메밀꽃밭이다. 시기를 달리해 꽃을 나눠 심었기에 9월 내내 꽃구경을 할 수 있다.
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