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어청수 경찰청장의 거취 때문이다. 불교계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자니 쇠고기 파동처럼 감당하기 힘든 사태가 벌어질 것 같고, 그렇다고 어 청장을 사퇴시키자니 국정수행에 두고두고 후유증이 있을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4일 "이런저런 관측이 나오지만 현재로서는 정해진 방침이 없다"고 유보적으로 말해 고민이 간단치 않음을 드러냈다. 한나라당마저 어 청장의 사퇴를 건의하는데도 청와대가 주저하는 데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어 청장의 경질 요구가 무리하다고 보고 있다. 불교계가 문제삼는 부분은 경찰의 지관 스님 차량 검문과 전국 경찰복음회 금식대성회 포스터에 어 청장의 사진을 게재한 것이다.
청와대는 "그만한 일로 경찰 총수를 경질하는 게 합당하냐"고 반문한다. 경찰 복음회 포스터에는 이전 경찰청장도 대부분 사진을 게재했고, 지관 스님도 '법 앞의 만인 평등'이란 원칙에서 보면 검문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정국의 충격에서 벗어나 법과 원칙의 확립을 강조하며 국정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 어 청장의 사퇴는 이 대통령이 내건 명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되고 결과적으로 권위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원칙을 내세우다 집단적인 반발이 거세지자 백기를 든다면,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고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해왔던 '떼법'에 굴복하는 '허약정권'임을 자인하는 셈이 된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불교계는 어 청장의 사퇴 외에도 이 대통령 사과와 종교차별 금지입법, 수배자 해제를 요구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때문에 어 청장이 사퇴하더라도 불교계 반발이 진정된다는 보장이 없다. 다른 요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의 내부 동요도 문제다. 임명된 지 7개월 여 만에 그만한 일로 총수를 교체할 경우 청와대의 경찰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될 소지가 있다. 가능성은 적지만 어 청장이 임기직(2년)을 내세워 '사퇴불가'를 주장하면 경질할 법적 근거도 없다. 임기를 보장했으면 해당 임기까지는 책임과 권한을 줘야한다는 논리도 우리 사회에 엄존하고 있다. "9ㆍ11 테러 당시 미국은 아무도 경질하지 않았다. 우리도 사람 아끼는 문화를 쌓아나가야 한다"는 볼멘 소리가 청와대 내에서 나오는 것도 이런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문제는 국민정서다. 무작정 버티다가 자칫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청와대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쇠고기 파문의 여진도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당분간 어 청장 사퇴를 거부하다가 갈등이 비등점에 이를 때 어 청장 스스로 자진 사퇴하는 모양새를 택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과 전망이 나온다. 그리고 그 해법의 내용과 수순은 9일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염영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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