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가 취임한지 1년도 못돼 물러난 것은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다양한 퍼포먼스로 대중을 사로잡은 고이즈미(小泉)식 정치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바닥을 맴도는 지지율과 민주당의 정치 공세를 견디지 못한 후쿠다 총리가 수개월 전부터 사퇴를 생각해온 것은 주변에 제법 알려져 있었지만 정작 1일 발표를 미리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내 선임장관이자 총리 대변인으로 최측근인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관방장관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날 밤 기자회견 3시간 반 전에 처음 "사퇴하겠다"는 총리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할말을 잊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총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후쿠다 총리는 자신의 부인에게도 미리 말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침착한 태도, 점잖고 조심스런 발언 등 후쿠다 총리는 '안정감'이 장점인 지도자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그를 보는 사람들은 "인상에 남는 언행이 아무 것도 없다" "언제나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취임 직후 60%에 육박하던 내각지지율은 계속 떨어져 올해 들어 거의 2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짧았지만 재임 중에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도 있었고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 방일도 있었다. 세계 경제 악화의 여파로 물가가 오르고 일본 내 경기도 후퇴했지만 그것이 정치인에게 반드시 악재는 아니다. 하지만 "별스런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총평이다.
정치평론가 이토 아쓰오(伊藤惇夫)씨는 도쿄(東京)신문에 최근 일본 정치를 요리에 빗대 "맵고 자극적인 고이즈미 정치에 국민의 혀가 마비돼 버렸다"며 "아베식 중화요리, 후쿠다식 일본요리는 고이즈미 정치에 비하면 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지(時事)통신이 4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에 후쿠다 총리가 7.1%였을 때 고이즈미 전 총리는 21.2%로 1위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재임 중 영화의 주연배우처럼 정치를 이끌고 나가 '극장형 정치'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것이 우정국 민영화다. 공룡 같은 공기업인 우정국 민영화를 개혁이라는 이미지로 포장한 뒤 "개혁을 위해 죽어도 좋다" "낡은 자민당을 때려 부수겠다"는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국민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자민당 내에서도 반대가 만만치 않자 총리 권한으로 아예 중의원을 해산해버렸다. 당시 총선에서 우정국 민영화의 의미도 모른 채 "멋있다"며 고이즈미에 열광한 젊은이도 적지 않았다.
당내 기반이 약했던 그는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해 자신의 정책을 직접 국민에게 전했다. CNN과 인터뷰 중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부르는 등 언제나 화제를 불러 대중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지도자였다. 후쿠다 총리는 이런 고이즈미식 정치를 싫어했음에 틀림 없지만 그의 방식으로 고이즈미식 정치의 '스펙터클'을 맛본 대중의 눈과 마음을 사로 잡기에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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