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악화되는 경제 현실에 삶이 너무 팍팍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생활고를 덜어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착각에 불과했을까. 중소기업 차장 황모(40)씨는 지난 1일 발표된 세제 개편안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연봉 4,000만원이 조금 넘고, 서울 강북에 시가 5억원 안팎의 집 한 채를 갖고 있는 '평범한 서민'. 고유가 대책도, 부동산 대책도, 세제 개편도 새 정부가 내놓는 정책마다 그를 외면했다.
중산층 이상 부유층도 아닌, 그렇다고 영세민도 아닌 이 시대 중간에 위치한 평범한 서민들의 지지는 이명박 정부 탄생의 밑거름이었다. 이들의 참여정부 양극화 심화에 대한 배신감, 이로 인한 경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다면 과반수 득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한 때 든든한 허리 역할을 했던 중산층에서 갈수록 하위층으로 밀려 내려가고 있는 이들은 새 정부 각종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 "부자들이 소비를 늘려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정말 없는 사람들은 구제해줘야 한다"고 부유층과 영세민들은 이래저래 수혜를 입고 있지만,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간 계층은 수혜의 사각지대다. 위와 아래 모두 끼지 못한 채 상대적 박탈감을 곱씹어야 하는 '샌드위치 계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들을 가장 뿔나게 한 건 세제 개편이다. 향후 5년간 26조원에 달하는 감세의 절반 가량은 소위 '2% 부자'들의 몫이었다. 돈을 벌어도(소득세), 집을 팔거나 보유해도(양도소득세ㆍ종합부동산세), 재산을 물려줘도(상속ㆍ증여세) 득을 보게 했다.
넉넉한 수준이랄 순 없지만, 영세민들에게도 적잖은 지원이 있다. 내년부터 지급되는 근로장려금(EITC) 지원이 최대 8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늘어나고, 한시적이긴 해도 1인당 최대 24만원의 유가 환급금이 돌아간다. 월 167만원 이하 저소득층에는 주택 임차료를 지원하는 '주택 바우처 제도'도 도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국민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황씨 같은 중간층 서민들은 소득세 부담이 일부 줄어드는 것 외에 감세 체감이 쉽지 않다. 물론 절대액으로 보면 적다고 할 순 없다. 내후년엔 지금보다 근로소득세가 53만원(4인가족, 총급여 4,000만원 기준) 줄어든다. 월 4만원 남짓한 금액이다.
그렇다고 감지덕지일 순 없다. 상대적 박탈감이 훨씬 크다. 황씨는 "나보다 못한 영세민들만 집중 지원한다면야 모르겠지만, 그보단 고소득 재산가들에게 훨씬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현실에 화가 난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지금의 경제난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계층이다. 집 한 채 장만하기 위해 빌렸던 대출금의 이자는 연일 치솟고 있고, 부자들을 따라 뒤늦게 예금 톡톡 털어서 가입했던 펀드는 낭패를 봤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의 체감 부담도 이들 샌드위치 계층이 가장 클 수밖에 없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새 정부의 구미에 맞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 그리고 부차적으로 최하위 계층에 대한 시혜적 복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 중간 계층은 시야에서 사라진 상태"라며 "이들 계층에게 필요한 건 당장의 금전적 수혜 보다도 다시 중산층으로 올라 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정부의 비전 제시"라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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