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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18> 에쓰오일 사회봉사단 도움에 세상과 다시 소통하는 조복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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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18> 에쓰오일 사회봉사단 도움에 세상과 다시 소통하는 조복수씨

입력
2008.09.0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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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는 걸음들에

부모형제 처자식 걱정이 채이겠지만

어차피 삶은 개개인의 몫일 진데

모두 홀홀 벗고서

떠나가소서!'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일까. 2001년 3월 서울 은평소방서 소방장으로 근무하던 남편은 출근 전에 이런 시를 써서 보여줬다. 갸우뚱거리는 아내에게 남편은 이렇게 당부했다. "내게 만약 무슨 일이 생겨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남들 말 듣지 말고 자기가 생각한 대로 밀고 나가면 돼." 하지만 당시엔 그게 남편의 마지막 말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남편을 배웅한 다음날, TV에선 "서울 서대문구 홍제1동 2층 주택 화재 진압 도중 소방관 6명이 숨졌다"는 아나운서의 무뚝뚝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사망자 명단에서 '김기석'이라는 남편 이름 석 자를 발견한 순간, 아내 조복수(44)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경황없이 남편의 상을 치른 뒤 다시 꺼내 본 시에서는 남편이 분명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고 있었다.

'열악한 환경

얄팍한 처우에도

묵묵히 견뎌 온 이생의 인내심을

이제는 벗고

밝고 희망이 가득한

계급 따위의 서열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삶이 이루어지소서'

조씨는 남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견딜 수 없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가정에 헌신적이던 남편을 그리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우리 사회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조씨는 세상과 담을 쌓고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원광대와 방송통신대를 나온 남편은 소방관이 될 때 성적이 뛰어나 사무실 근무를 할 수도 있었지만, 승진이 늦고 봉급도 낮다며 스스로 외근직을 선택했다. 그런 남편을 말리지 못한 건 자신의 죄라는 생각에 조씨의 한은 더 컸다.

이런 조씨를 다시 일으켜 세워 '아이들에게 힘이 되는 엄마가 돼 달라'고, '세상으로 걸어 나가라'고 북돋운 것은 바로 남편이었다. "남편의 시를 곱씹다 보니 불현듯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편의 또 다른 시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나 있었다.

'그대를 알고부터

가슴속 깊이

그리움의 씨앗을 묻었습니다

친근한 이웃의 손을 빌어

거름을 주고

내게 주어진 삶의 부분을 떼어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싹을 틔우고 줄기를 만들어

꽃잎이 벙그러질 때까지

(중략)

이 가슴 가득히 그리움의 밭이 되기로 하였습니다'

조씨는 사고 당시 9살과 3살이었던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는 게 남편이 일군 울타리와 그리움의 밭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일어선 조씨가 맨 처음 한 일은 바로 컴퓨터를 켜는 것이었다.

평소 시인이 되고 싶어했던 남편의 뜻을 받들기 위해 먼저 인터넷을 통해 남편의 시를 알리기로 한 것이다. 당장 시집을 내고 싶었지만 경제적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조씨는 2004년 인터넷 사이트에 문학 카페를 만든 뒤 스스로 운영자가 돼 남편의 유작시를 올렸다. 그러나 남편이 남긴 시는 많지 않았다. 카페를 풍성하게 만들 욕심에 조씨도 시를 한 두 편씩 지어 올리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점차 시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조씨는 남편의 시를 모 문학지의 신인작품상 공모에 냈다. 고인(故人)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고르는데 대해 심사위원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지만, 남편은 결국 시 부문 당선자로 뽑혀 등단하게 됐다.

시인이 되고 싶어했던 남편의 꿈이 드디어 이뤄진 것이다. 조씨도 비슷한 무렵 시인으로 등단했다. 조씨는 남편과 자신을 비롯, 몇몇 신인 등단 시인들의 작품을 모아 공동시집까지 냈다.

조씨의 사연이 알려지며 문학 카페의 회원 수는 크게 늘어났다. 조씨에게 등단의 길을 묻는 회원들도 줄을 이었다. 이제 조씨는 문학도들에게 등단의 길을 안내하는 길라잡이가 된 셈이다.

조씨가 이처럼 인터넷 카페에 전념하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에쓰오일의 '소방영웅 지킴이 활동'이 큰 힘이 됐다. 에쓰오일은 2006년부터 화재 진압 중 숨진 소방관의 자녀에게 1인당 300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일정한 수입이 없어 한 푼이 아쉬운 조씨에게 매년 600만원이라는 학자금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남편의 유작시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개설한 인터넷 문학 카페가 이젠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 됐고 새로운 삶을 여는 계기가 됐어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도 많은데, 도와주는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욕심 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겠습니다."

■ 소방영웅·어린이·소외이웃·지역사회·환경

에쓰오일의 사회공헌활동은 지난해 1월 임직원 750여명의 자발적인 참여로 출범한 '에쓰오일 사회봉사단'을 중심으로 크게 다섯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먼저 영웅 지킴이 활동이다. 순직 소방관 및 장애로 퇴직한 소방관 자녀의 교육비를 지원하는 '소방영웅 지킴이'와 희생 정신을 발휘해 사회에 의로운 일을 한 시민영웅을 발굴ㆍ지원하는 '시민영웅 지킴이'가 대표적이다.

둘째, 어린이 지킴이 활동이다. 2006년부터 한 재단과 함께 난치병으로 장기 투병 중인 어린이들을 초청, 함께 여행을 다녀오는 '희망 나눔 캠프'를 열고 있다. 울산과 마산, 아산의 8개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 안전펜스를 설치하고 안전 호루라기를 배포한 것도 어린이 지킴이 활동의 일환이다.

셋째, 소외이웃 지킴이 프로그램이다. 에쓰오일은 2006년 9월부터 한국복지재단, KBS와 함께 '사랑의 리퀘스트' 자동응답시스템(ARS) 모금액의 10%를 추가로 기부하고 있다.

지난해 지원금만 2억400만원. 또 2006년 2월부터 매월 전국의 소년소녀 가장이나 장애인 보호시설 및 도서산간 지역 등 문화 혜택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방문, '찾아가는 노란 음악회'도 열고 있다. 2006년 12월엔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참여로 설립된 공익법인 한국에너지재단에 20억원을 출연했다.

넷째, 지역사회 지킴이 활동이다. 에쓰오일은 2007년 6월 울산지역 소외계층의 복지 증진을 위해 25억원을 출연, '에쓰오일 울산복지재단'을 설립했다. 2001년부턴 쌀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온산지역 농민들을 돕기 위해 이 지역 농가에서 생산된 추곡 중 7,000∼1만4,000가마(1가마 40㎏)를 매입하고 있다.

이렇게 수매한 벼는 추석 또는 연말연시 울산시를 통해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모자ㆍ부자가정 등에 전달하고 있다. 울산 출신의 소설가 고 난계 오영수 선생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오영수 문학상'을 제정, 1993년부터 매년 수상하고 있는 것도 지역사회 지킴이 활동의 일환이다.

다섯째, 환경지킴이 프로그램이다. 에쓰오일은 지난 5월 문화재청과 협약을 맺고 멸종위기에 놓인 천연기념물을 보호하는 '천연기념물 지킴이' 프로그램을 시작, 첫번째 보호종으로 수달을 선정하고 주요 서식지 보호활동 등을 위해 1억원을 지원했다.

이외에도 어려운 이웃을 위한 일일 배달천사 봉사활동, 노숙자를 위한 사랑의 떡국 나누기 봉사활동, 환경보호를 위한 숲 가꾸기 봉사활동, 시각장애인 마라톤ㆍ여행 도우미 봉사활동, 사랑의 송편 나누기 봉사활동 등 지역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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