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강국을 향한 대역사!'
3일 울산 남구 용연동에 자리잡은 SK에너지 제3고도화시설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플래카드의 문구이다. 축구장 55개가 들어설 수 있는 40만㎡ 부지 위엔 76m 높이의 원통형 철제 반응탑을 중심으로 각종 분리탑, 반응기, 재생기, 대형 파이프 등이 반도체 회로보다 더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이곳이 바로 원유를 1차 정제했을 때 나오는 저가의 벙커C유를 재처리해 고가의 휘발유와 경유 등을 생산, '지상유전'으로 불리는 고도화설비다.
사람 키보다도 큰 배관들이 몇 개 층에 걸쳐 엇갈리는 구조물 밑을 지나 공장 중심부로 들어서자, '웅웅' 하는 각종 펌프 소리와 '쉭쉭'거리는 증기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그러나 직원들의 그림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장치 산업의 특성상 이 큰 공장도 단 35명의 직원이 움직인다.
조정실에서 만난 송만규(50) 생산2팀장은 "통상 고도화 설비는 2년의 건설 기간과 3개월 이상의 시운전이 필요한 데 '에너지 독립국'의 꿈을 하루 빨리 실현하겠다는 사명감에 세계 최단 수준인 15개월 만에 공사를 마치고 시운전도 2개월 만에 끝냈다"고 설명했다.
SK에너지가 고도화시설 건설에 나선 것은 더 이상 단순정제만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원유를 100배럴 정제할 경우 경유는 20배럴, 휘발유는 19배럴, 등유는 18배럴 밖에 생산되지 않는 반면, 벙커C유는 40배럴이나 나온다.
문제는 현재 벙커C유 가격이 원가보다도 10% 이상 싸다는 것. 그런데 이 벙커C유를 고도화시설에 넣어 재처리하면 여기에서 다시 휘발유(45%)와 경유(29%)가 나오고 화학제품의 기초 원료인 프로필렌(13%)과 액화석유가스(3%)도 생산된다. 현장에서 만난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이 "고도화시설은 밥하고 남은 '누룽지'를 '누룽지탕'으로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이유이다.
물론 저가의 벙커C유를 고가의 휘발유와 경유로 바꾸려면 먼저 탈황공정을 통해 고유황 벙커C유를 저유황 벙커C유로 만든 뒤 중질유 유동층 촉매 분해공정이란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공정이 복잡하다 보니 고도화시설엔 촉매재생기, 프로필렌 분리탑 등이 필요하고, 이를 갖추려면 일반 정제시설의 10배에 가까운 투자금이 요구된다. 하루 6만배럴 생산 규모인 이번 고도화시설을 위해 SK에너지는 무려 2조원을 투자했다.
고도화설비는 친환경 설비일 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큰 도움을 주는 효자 장치이다. 고도화시설에서 생산되는 휘발유나 경유 등은 모두 수출되기 때문이다. 이번 공장 가동으로 연간 3조4,000억원의 원유 도입비용 절감 효과가 생기고 연간 4조원의 석유류 제품 수출 증대가 가능하다는 게 SK에너지의 설명이다. 이 경우 연간 7조원 이상의 국제수지 개선이 기대된다.
최태원 회장은 이날 준공식을 갖고 생산을 시작한 고도화시설을 둘러본 뒤 "친환경 기술 및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 인재채용 등을 확대하고 2015년까지 10만배럴의 자주원유 확보를 통해 에너지 안보의 역군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울산=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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