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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마타하리? 김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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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마타하리? 김수임?

입력
2008.09.0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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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타하리도, 김수임도 아니며, '쉬리'는 더욱 아니다. 오랜만에 '프로페셔널' 간첩사건이 발표되자 언론의 관심이 높았다.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 '미모의 여간첩 원정화'에 대한 소문들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원정화에 대한 관심보다 마타하리나 김수임에 대한 얘깃거리를 복원해보고 싶은 세상의 욕심 때문인 듯하다.

경찰의 발표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명백히 나뉘었다. 세칭 보수언론들은 한결같이 그를 마타하리에 비유하며 대서특필했다. 자칭 진보언론들은 그가 혹시 김수임이나 쉬리일지 모른다는 뉘앙스를 깔아 신중하게(?) 다뤘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마타하리(1876~1917)와 그는 공통점이 많다. 주관적 생각일 수 있으나 관련자들 모두가 미모라고 얘기했다. 그럴듯한 가정에서 출생했지만 부모의 문제로 불우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가명을 사용하여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드나들었고, 자신에게 간첩혐의를 씌운 국가에 근무하는 군 장교들 사이에 사교계의 여왕으로 알려졌다. 그들 중 한명과 진짜 결혼도 했다. 원정화가 알뜰히 군사기밀을 빼낸 것에 버금가게 마타하리는 재판에서 "그녀가 빼낸 정보는 연합군 5만 명의 목숨을 잃게 할 만한 것이었다"는 판결을 받았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까지 활동했던 김수임(1911?~1950)은 '한국판 마타하리'로 알려져 있다. 미모에 엘리트 학력까지, 불우한 어린 시절 이상으로 그는 태생적 고아였고, 군 장교 차원을 넘어 당시 미8군 사령부의 최고 실세(헌병감ㆍ대령)의 연인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오히려 마타하리를 능가했다. 그가 간첩혐의를 받은 것은 진짜 간첩이었던 이강국과의 삼각관계 때문이었다. 그가 사형에 처해진 뒤 당시 신문들은 그의 간첩활동보다 '애정유죄(愛情有罪)'란 제목을 더 크게 썼다. 이를 주제로 많은 연극이 만들어 졌고, 영화 '쉬리'의 주인공처럼 각색되기도 했다.

■최근 AP통신은 김수임 관련 비밀기록을 공개했는데 '한국판 마타하리 사건'은 무리였다고 밝혔다. 고문으로 거짓 자백이 나왔으며, 그를 변호할 수 있었던 당시 미8군 실세는 자신의 난처함을 피하기 위해 귀국해버렸다고 했다. 마타하리가 '연합군 5만명을 사경으로 몰고 갈 만큼' 영리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이며, 1999년 해제된 영국의 기밀문서도 그가 간첩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도 원정화를 마타하리니 김수임이니 하고 있으니 뭔가 잘못됐다. 신문에 나지 않아서 그렇지, 1998년부터 2006년까지 국정원이 체포한 간첩의 숫자는 33명이나 된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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