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40년 역사는 '풍요로움을 향한 전진'으로 요약된다. 약관 스물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패전국의 현실을 낱낱이 목격하며 사업을 일군 젊은 실업가는 전후 재건시대 헐벗고 굶주린 조국의 현실에 아파하면서 '기업보국(企業報國)'의 신념을 굳혔다.
기업을 일궈 폐허의 조국 어린이들에게 풍요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가 모국에 대한 첫 투자로 과자회사를 택한 것도 우리 어린이들이 군부대 PX를 통해 흘러나오는 미제 껌에 침 흘리는 현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1965년 한일수교가 이뤄지자 재일 기업인 신격호 회장은 곧바로 모국에 대한 투자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67년 자본금 3,000만원을 들여 ㈜롯데제과주식회사를 세웠다. 이어 기업 인수ㆍ합병(M&A)을 통해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을 잇따라 설립, 국내 최대의 식품기업으로 발전했다.
국내 첫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롯데리아를 설립해 선진 외식문화를 소개하는 데도 앞장섰다. 79년 롯데리아 1호점(소공점)이 문을 열고 청결한 매장에서 신선한 재료로 만든 햄버거가 첫 선을 보이자, 청소년뿐 아니라 할아버지들까지 아침 일찍 매장을 찾아 장사진을 이루었다.
또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은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ㆍ관광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으며, 잠실벌에 세운 세계 최초의 실내 테마파크 롯데월드는 경이로운 판타지의 세계를 선보이며 국내 레저문화의 토대를 바꿔놓았다.
생활문화 선도업체로서 탄탄한 발판을 구축한 롯데는 2000년대 들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추가했다. 금융업 및 해외 진출을 통해 '글로벌 롯데'의 큰 그림을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중국에 지주회사를 세우면서 실시한 광고 캠페인 '롯데가 있어 즐거운 내일'은 롯데가 추구하는 풍요 창조 정신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 풍요 창조의 핵심은 '완벽주의'
롯데그룹을 관통하는 기업정신은 품질과 서비스 완벽주의에서 나온다. 완벽성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일에서 최고가 되라"는 평소 신 회장의 지론에서 시작된다.
"재계 서열 5위(공기업 제외)의 위상에 비춰 자동차나 중공업 같은 제조업체를 하나쯤 갖고 있어야 하지않느냐"는 주변 건의에 대해, 신 회장은 "무슨 소리냐, 우리의 전공분야를 가야지"라며 한마디로 일축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재벌총수 중 유일한 1세대 창업주인 신 회장은 잘 모르는 분야를 빚을 얻어 방만하게 경영하는 것에 대해 특히 비판적이다.
롯데그룹이 IMF외환위기 시절, "재벌그룹 중 유일하게 자금난을 겪지않은 그룹"이라는 명예를 얻은 데는 창업주의 내실 있는 경영방침이 큰 몫을 했다.
신 회장은 롯데제과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반드시 출시 전에 시식해보고 스스로 납득이 가지 않으면 상품화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중간 한 것을 싫어하는 품질 완벽주의 때문이다.
73년 준공을 앞둔 롯데호텔을 시찰하던 도중 멀쩡한 복도의 천장을 깬 사건은 신 회장의 완벽주의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당시 신 회장은 수행 직원에게 천장을 깨게 한 뒤 직접 랜턴을 비춰보며 방화구 배선 등을 꼼꼼히 체크, 간부진의 간을 서늘하게 했다.
■ '글로벌 롯데'의 핵은 유통과 금융
껌과 초콜릿을 만들어 파는 제과업에서 출발, 유통 관광 레저까지 삶의 풍요를 선사하는 모든 방면에서 최고기업으로 우뚝 선 롯데는 2000년대 들어 더 큰 시장을 통해 기업의 미래를 키우려는 계획을 짜고 있다.
'글로벌 롯데' 전략이다. 장병수 그룹홍보실장(전무)은 "재계 10대 그룹 중 유일한 마케팅전문 그룹이 롯데"라며 "롯데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일을 찾고 그룹의 역량을 집중한다는 대원칙아래 글로벌 유통과 금융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업 진출은 신동빈 롯데 부회장의 진두지휘아래 속도를 더하고 있다. 대한화재와 코스모투자자문 등 금융업체를 잇따라 인수, 금융계열 자산 비중이 전체 40조원 중 15%로 늘었으며 증권회사 인수도 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유통사업은 베트남 러시아 인도 중국을 전략지역으로 선정, 롯데백화점이 이미 러시아와 중국에 점포를 냈으며 롯데자산개발을 통해 롯데의 다양한 계열사들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복합쇼핑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객을 위해 풍요로운 삶을 창조한다'는 롯데의 꿈은 세계로 뻗고 있다.
■ 롯데제과 최장수 직원 김성한 부장
"입사 초기엔 5~6명이 한 팀이 돼 품질 향상을 위해 밤낮을 새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당시만해도 '품질'을 따지는 회사가 없던 때라 식품업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자부심이 대단했지요."
김성한(54) 롯데제과 품질관리실 부장은 롯데제과 최장수 직원이다. 1978년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입사한 이래 꼬박 30년을 품질관리실에서 근무했다. '식품기업이 나가야 할 방향인 품질 연구와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는 포부 아래 당시 '품질 제일주의'를 표방한 롯데제과에 자신의 미래를 투자했다.
입사 후 원ㆍ부자재에 대한 입고 검사, 납품처의 환경과 품질 개선 지도, 생산공정 기준에 맞춘 전 생산 과정의 관리 등 다른 회사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다양한 품질관리 시스템을 접했다.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1980년대 초 개발팀에서 내놓은 '스크류바'의 실제 생산에 성공했을 때. "아이스바는 대부분 둥근 원통형이나 납작한 사각형이었는데, 스크류바는 꽈배기 모양으로 빼내는 신기술을 도입했습니다.
공정은 까다롭지만 워낙 독특한 외관 때문에 당시 소비자는 물론 경쟁사들도 깜짝 놀랐고 단번에 스테디셀러가 됐어요.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흐뭇합니다."
김 부장은 롯데제과의 품질 제일주의는 기본적으로 신격호 회장의 꼼꼼한 현장경영에서 생겨났다고 말한다.
신 회장이 워낙 예리한 미각을 갖고 있는데다, 성에 차지않으면 가차없이 다시 제작하라는 명이 떨어져 시식용 신제품을 올릴 때마다 초 긴장 상태였다고. 품질에 대한 집착은 곧 성과로 이어져 김부장은 1995년 전국품질분임조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품질명장'의 영예를 안았다.
98년에는 제과업계 최초로 제품에 대한 품질안정성 확보를 위한 HACCP(Hazard Analtsis Critical Control Pointㆍ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우기도 했다.
김 부장은 "HACCP 인증으로 품질과 위생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작업자들이 위해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요령과 방법을 쉽게 터득하게 됐다"고 전했다.
김 부장은 정년을 1년 남겨두고 있다. 은퇴 후에는 지금까지의 품질관리 노하우를 재산으로 식품관련업 컨설팅을 할 계획이다.
그는 최근 잦았던 음식품류 이물질 파동에 대해 "예전에는 이물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워낙 떨어져서 혹 제품에 이물질이 들었어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확실히 위생관념 등이 높아졌다"면서 "그만큼 식품업계의 품질관리 수준이 한단계 높아지는 계기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강지원 기자 stylo@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