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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찬비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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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찬비 내리고

입력
2008.09.0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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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

빗물이 꽃송이를 친다. 꺼져가는 꽃들의 안색이 아프게 파문을 일으킨다. 꽃들의 아픔은 사랑 때문이다. 나도 꽃들처럼 아프다는 소리를 내지르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다. 내가 아프면 당신도 아플 테니까.

이런 마음을 알아서 난간에 매달려 앙버틴 채 떨어지지 못하는 빗방울이 있다. 꽃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과 교감하는 빗방울의 글썽임은 눈시울을 댐의 둑 삼아 꾹 버티고 있는 눈동자를 연상케 한다. 사랑이 떠나가고 나면 나는 시들어갈 것이고, 난간에 매달려 있던 빗물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주르륵 흘러내릴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함부로 향기로울 수도 없다. 그것이 떠나는 당신의 발길을 무겁게 한다면 그마저도 잠시 접어놓아야 한다.

마음에 홍수가 왔지만 차마 당신 앞에서는 방류를 할 수 없는 댐이 수력발전소가 되어 슬픔을 빛으로 치환하고 있다. 가을 빗물이 당목처럼 꽃을 치고 간 뒤, 후끈했던 여름의 향기가 안으로 스며들어 오는 한때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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