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원(54) 경희대 총장은 요즘 총장으로는 보기 드문 정치학자 출신이다. 모교에서 15년 동안 정치학을 가르쳤다. 그는 이른바 'CEO형 총장'과도 거리가 멀다. "'펀드 레이징(기부금 모금)'이 총장이 해야 할 역할 중 하나임에 틀림없지만, 핵심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대신 그는 대학의 국제.세계화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조 총장은 "문화 세계 또는 문명의 진보와 발전을 위해 대학이 존재해야 하며, 이를 위해 캠퍼스의 글로벌화는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2006년 12월 총장에 취임한 그는 6개월여 뒤 수원캠퍼스를 국제캠퍼스로 이름을 바꿨을 정도로 대학의 글로벌화에 관심이 많다. 내년 5월 개교 60주년을 맞는 조 총장은 "대학의 사회적 책임과 국제적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말했다. 대학은 사회 및 세계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 경희대가 국제화에 특히 비중을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국제ㆍ세계화에 치중한지는 꽤 됐다. 그렇지만 타 대학과 다른 부분은 분명히 있다. 학술기관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의 사회적 책임과 국제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게 그것이다. 책임이라는 것은 결국 국제 사회 기여를 의미한다. 항상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 경희대가 특별히 중시하는 것은 대학의 존재 이유와 관련한 부분이다.
문화 세계 또는 문명의 진보와 발전을 위해 대학이 존재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여러 가지 역할과 기능이 있겠지만, 좀 더 나은 문명의 진화와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 아니겠는가. 진화와 진보의 측면은 여러가지가 있다. 크게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물질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세계, 즉 사회적 담론과 국제적 담론을 생산해 내는 역할이다.
바로 이 부분이 대학의 고유한 기능이다. 우리나라 대학은 국내 사회와 국가도 생각해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회와 나라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소통은 어떤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학문 행위의 결과가 국내외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해야 한다."
- 국제화 인프라 구축이 중요할텐데.
"국제화 인프라는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외국인 교수와 학생 수, 원어 강의와 교환 학생수, 그리고 외국 대학과의 복수 학위제 등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글로벌 마인드라는 생각이다.
전 지구적인 이슈라고 할 수 있는 인권ㆍ평화ㆍ기후변화 등의 문제는 이제 한 국가에 국한된 게 아니다. 각 국가들이 힘을 합쳐야 하는 사안들이다.
이러한 것들을 교육제도에 반영해, 학생들이 장기적으로 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문제의식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세계 수준의 강의를 접하고, 교수들 밑에서 상상력과 창조력을 키워야만 중장기적으로 좀 더 넓은 삶의 방식을 꾸려갈 수 있다."
- 대학 재정난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국제화도 궁극적으로 재정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것 아닌가.
"재정 문제는 사립대가 겪고 있고, 국립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런 관점에서 일단 세계 유수 대학을 목표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WCU(World Class University)와 같은 재정 지원사업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
이 외에도 정부는 각 대학의 국제화 사업을 꼼꼼이 평가해 타당할 경우 재정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 프로그램 기획이 뛰어나고 실적이 우수한 대학에는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지난 1년 동안 '창조 21'을 준비해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래 학문을 선도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기관으로 거듭나려는 시도다. 기본 취지는 이런 것이다. 교육의 기반이 튼튼하지 않다면 미래 사회의 발전 동력은 왜소해질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다. 대학이 선진국을 능가해 줘야만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다.
국고지원이 별로 없었지만, 기업의 기부금 100억원을 유치했다. 세계 수준의 연구프로그램 운영에 쓸 생각이다. 21세기가 요구하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선정해 집중 투자한다는 뜻이다. 개교 60주년을 맞는 내년에 2~3개 프로그램이 가시화 할 것이다."
-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신설한 재정예산 전담 부총장 자리도 결국 재정 확충을 위한 한가지 방안이라고 보면 되나.
"대학이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그 보다는 각 대학 특유의 장점을 살리고, 이를 재정과 연계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 경희대의 경우 한방대학이나 약학대학이 관련 사업을 벌여 재정을 충당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대학 전체의 마스터플랜을 완성하려면 1조 5,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한데, 이는 대학 재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창의적인 투자방식을 활용해 재정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산업협력을 통해 기업이 연구소를 짓게되면 대학이 자체 연구인력을 공급 하거나, 대학이 미래 가능한 사업을 기업에 건의하면 기업이 검토를 거쳐 자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일들이 재정 담당 부총장의 역할이다. 또 대학이 지역사회를 위해, 혹은 시민들을 위해 문화예술 공간을 마련한 뒤 수익금을 학생 장학금으로 활용하는 것도 재정 부총장이 해야 할 부분이다."
-언제부터 인가 '대학 총장= CEO형 총장'이 굳어진 양상이지만, 경희대는 다른 것 같다.
"CEO형 총장은 외부로부터 돈을 끌어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사립대 현안을 해소해준다는 측면에서 일면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미국 하버드대 총장이 기부금 유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진 못했다.
총장의 역할은 다른 곳에 있다고 믿고 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먼저 대학의 현 주소를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다른 대학과 세계적인 명문대학에 견주는 작업도 해야 한다.
과연 어떤 방식을 통해 경쟁대학과 선진 대학을 능가할 수 있는 지를 전략적이고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중책을 맡아야 옳다. 총장이 시대의 흐름과 문명의 전환을 읽어내지 못하면 발전 가능성은 희박하다. 세계 유수대학을 벤치마킹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대학 경쟁력의 잣대를 놓고 말들이 많다.
"대학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연구 분야다. 논문 관련 편수도 중요하지만 저명 학술지 피인용지수가 더 부각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외국에서는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의 경우 논문 인용지수보다 저서 관련 부분이 평가에서 훨씬 높은 비중을 띠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미국은 절대 논문 편수로 대학 평가를 하지 않는다. 우리 대학도 논문 양산도 중요하지만,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창의성과 연구 교육에 헌신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정착되면 우리 보다 앞서가는 나라의 대학을 넘어설 수 있는 저력이 될 수도 있다.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살아나는 분위기를 대학과 사회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탁월한 업적을 낸 분들에 대해 권위와 명예를 인정해 주는 문화가 절실하다. 대학의 양적 팽창은 지양해야 옳다."
-개교 60주년이 갖는 의미는.
"개교 60주년은 대학 입장에서 볼 때 대전환을 이루는 초석이 될 것이다. 몇가지 대전환을 향한 구상을 하고 있다. 하나는 학문적인 수월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다. 연구와 교육 분야의 역량이 세계적인 수준이 되도록 올인할 계획이다.
교수들에 대해 다양한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승진과 재임용 체계도 변화를 줄 계획이다. 전체 교원 중 외국인 교수 비중을 15%까지 늘리는 방안도 있다. 다른 하나는 '글로벌 스튜디오 네트워크' 구성이다.
이것은 교육 연구 강화를 위한 제도다. 우리 대학의 화두는 세계화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학술ㆍ문화ㆍ문명의 거점 도시에 스튜디오를 만든 뒤 인근의 다양한 대학과 연구소, 그리고 문화 예술 기관과 기업의 인력풀을 교수진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스튜디오 안에서 현지 수업이 가능해 실시간으로 세계적인 석학들과 함께 호흡이 가능하다. 넓은 세계와 함께하는 학교의 모습을 대내외로 알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수와 학생들에게 자극이 될 것이고, 변화에 가속도가 붙는다.
내년 5월8일부터 12일까지 열릴 '월드 시빅 포럼(WCF)'도 준비 중이다. 유엔과 함께하는 사업이다. 포럼이긴 하지만 몇 가지 다른 차원의 의미가 있다. 유엔의 고유한 기능이자 인류의 보편가치인 인권, 평화, 보건, 의료 등 글로벌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유엔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상설화한 교육연구프로그램으로 전 세계 주요 대학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조만간 양해각서(MOU)가 채택될텐데, 미국 프린스턴대와 펜실베이니아 대학 등이 기관파트너로 참여한다."
■ 주요 약력
▲서울 출생(54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교수, 학교법인 경희학원 상임이사
▲유엔 밀레니엄 NGO포럼 운영위원, 경희대 NGO 대학원장, 국무총리 자문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위원
대담= 김진각 사회부차장 kimjg@hk.co.kr
정리=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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