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1시간여의 길지 않은 시간, 그는 참 많은 말을 쏟아냈다. <사천 사는 착한 사람> (1996), 한일 합작 연극 <강 건너 저편에> (2002) 등으로 '절제된 표현 속에 빛나는 강렬한 주제 의식'이라는 호평을 받았던 연출가 이병훈(56)씨는 오랜만에 접하는 연극 무대에 무척 설레는 듯했다. 강> 사천>
4~10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선보일 <리어왕> 으로 <농업소녀> (2005) 이후 3년 여 만에 연극 연출자의 자리로 돌아온 그는 "연극과 삶에 관해 생각이 많다"고 했다. 농업소녀> 리어왕>
"뇌의 불균형으로 두통과 어지럼증이 심해 한동안 활동을 쉬면서 연극에 대한 욕망이 더 커졌어요. 그 동안 연출한 작품에 실수도 많았던 것 같고, 인생에 대한 통찰력도 많이 부족했고. 건강 상태가 아직 회복기에 불과해 조심스럽게 활동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극단 미추와 함께 무대에 올릴 셰익스피어 원작의 <리어왕> 은 몸이 회복되면 꼭 도전하리라 마음 먹었던 작품. 늙고 나약한 리어왕이 세 딸에게 자신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시험하면서 시작되는 비극으로, 인간 내면의 배반과 증오, 질투, 이기심 등을 그린 <리어왕> 에 대해 그는 "연출가에게는 무덤을 파는 일이라 할 만큼 어려운 희곡"이라고 설명했다. 리어왕> 리어왕>
"가벼운 작품으로 복귀할 생각도 있었지만 고통 이후에야 인생을 바로 보게 되는 <리어왕> 의 인간 군상이 꼭 지금의 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병을 발견했을 때 왜 내게 이런 고통이 왔을까 싶었던 제가 지금은 생명의 경외감과 겸손을 알게 됐으니까요." 리어왕>
그는 쉬는 동안 연극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관객의 입장을 많이 헤아리게 됐다고 한다. 이번 공연의 일차 목적을 원작의 뼈대를 튼튼히 해 이야기를 정확히 전하는 데 둔 것도 그런 이유다. "무조건 새로운 걸 보여준답시고 원작을 지나치게 변형하는 건 연극인들의 착각이자 실수예요. 한국 관객은 셰익스피어를 그리 깊게 이해하고 있지 않잖아요."
어린 시절 수줍은 소년이었던 그에게 연극은 일생의 보람을 알게 해 준 스승이었다. 건강 상의 문제를 겪기 전까지 단 한번도 연출가의 삶에 회의를 가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연극은 숙명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는 장르인데 요즘 기획자들이 자꾸 대중화라는 이름으로 연극의 본질을 흐리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연극은 거대한 기계 사이에 낀 모래 한 알처럼 작지만 보이지 않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죠. 지금처럼 혼란의 시기일수록 연극이 깊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그는 여전히 연극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본다. 70, 80년대 생존의 시대에서 지금의 웰빙 시대를 넘어 곧 영적인 시대, 즉 인간이 존재에 대해 묻기 시작하는 시대가 오면 그때야말로 연극의 역할이 주목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오랜만의 연극 연출에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연극이 아직 힘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28가지 이상의 주제를 담고 있다는 학술적 분석이 있을 정도로 다각도의 접근이 가능한 <리어왕> 에서 그가 강조하고 싶은 주제는 세대 간의 갈등. "관객들이 늙어가는 것의 의미, 극단적 상황을 경험하고서야 깨달음을 얻는 인간 본연의 고뇌를 알게 됐으면 합니다. 리어왕>
더불어 관객들이 연극의 힘을 느끼게 된다면 공연을 준비하며 겪은 그 어떤 고통도 보상 받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번역 배삼식, 정태화 서이숙 박영숙 등 출연. 공연 문의 (02)747-5161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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