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마른 거래의 언어가 지배하는 일상 속, 우리는 은연중에 시와 노래를 그리워한다. 일과 놀이가 분리된 현대사회의 노동조건과 자본주의가 틀 지운 일상이 주는 피로를 없애려고 관객들은 무대 위에 세워진 '감각의 제국', 뮤지컬에 여가 시간을 맡기곤 한다.
일상의 누추함을 잊을 수 있는 광휘로운 볼거리, 세계적인 문화상표를 소비하고 있다는 특권과 만족, 배우들의 뛰어난 기량과 재능에 환호하는 마니아적 탐닉 등 대형뮤지컬이 흥행 산업에서 우위를 점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이 가운데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만족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는데도 소극장 창작뮤지컬을 찾는 이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제작자에게 소극장 창작 뮤지컬은 한국 공연시장에서 대형뮤지컬과 일반 연극 사이에 숨은 블루오션일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우리 뮤지컬의 창작역량을 키우는 실험과 습작일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새로이 제작된 소극장 뮤지컬 한편이 꽤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사이 관객층'을 향해 구애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사춘기> , 독일 표현주의 작가로 분류되는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을 한국의 청소년 현실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이희준 작, 김운기 연출, 박정아 작곡) 사춘기>
제목만 보자면 언뜻 청소년 대상의 공연물인가 싶겠지만 내용은 성인 관객층을 유인할 요소가 더 많다. 반항과 충동의 사춘기를 억누르고 기성제도에 잘 안착한 이들이라면 드라마틱하고 여유 있게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겠다.
위악적인 유혹자 영민(박해수)과 소심한 성격의 희생자 선규(맹주영), 두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정신적 혼돈, 성적 욕망과 금기위반, 자살충동에 이르기까지 사춘기를 다루는 삽화들이 영화의 점프 컷처럼 비약하며 펼쳐진다.
베데킨트가 반시민적 보헤미안을 대안적 삶으로 내세우고 기성세대에 대한 강력한 혐오를 담아냈다면, <사춘기> 공연은 뮤지컬이라는 위안 양식답게 감각으로는 도발적이되 담은 내용은 위험하지 않다. 사춘기>
기성 가치와 미적 질서를 위협하는 표현주의적 악몽, 공격적인 미학과 정치학은 밤무대의 코러스로 세련되게 배치되고 음악은 강력한 멜랑콜리로 육박해온다. 비판은 차단되고, 정서는 달떠 위험한 시간 '사춘기'로의 시간여행은 고통스럽기보다 감미로운 편이다.
결국 '꿈'을 이용한 일탈 욕구 정도로 처리된 결말은 가장 아쉽다. 주인공의 파멸과 정신병동에 갇히는 관습적 결말을 피하려다 뮤지컬 양식의 해피엔딩 관습에 갇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인의 신인 배우들은 가창력과 연기력 면에서 보석처럼 반짝이고, 소극장 뮤지컬이 갖는 정서의 근거리 호소력을 아기자기 잘 성취한 공연이다. 7일까지 설치극장 정미소. 12일~10월 12일 앙코르 공연 예정.
극작ㆍ평론가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