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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대통령이 '사과'하면 안되나

입력
2008.09.0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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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지난 6월 19일.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나흘 전, 투수 윤길현이 KIA 최경환에게 빈볼을 던지고 욕한 것을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경기 직후 윤길현의 사과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당사자 뿐 아니라, SK 구단 전체를 비난하는 야구팬들의 목소리가 연일 드높았다.

프로야구가 보여준 화해 사례

김 감독은 이날 "내가 빨리 나섰어야 하는데 죄송하다"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사죄의 의미로 하루 결장했고, 역시 자숙하라며 윤길현을 2군으로 내려보냈다. 선두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감독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야구지도자 인생 36년 만에 처음 자의로 경기장에 나가지 않고 숙소에 있었다. 그 긴 하루를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고통이 없었다. 그렇지만 내 야구인생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그는 모두를 움직였다. 팬들은 흥분을 가라앉혔고, 당사자인 윤길현은 진심으로 반성하며 1군에 복귀하자마자 KIA 선수들을 찾아가 다시 사과했다. 최경환 역시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라"는 말로 후배를 따뜻하게 용서했다. 이를 계기로 모든 프로야구 선수들은 스스로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결의문까지 냈다.

물론 이 모든 게 김 감독의 '사과' 덕분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뒤집어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내 잘못이 아니니 난 몰라"라 하며 당사자인 윤길현에게만 책임을 떠넘겼다면 어떻게 됐을까. KIA 선수들이 선뜻 화해를 했을까. SK가 여전히 팀워크를 발휘하고, 팬들의 지지 속에서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모든 프로야구 선수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화합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을까.

사과는 무쇠도 녹인다. 모든 것을 용서한다. 용서란 무엇인가. 달라이라마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과 다시 하나가 될 수 있게 하는 힘" 이라고 했다. 예수의 가르침도 같다. 사과는 패배가 아니다. 부끄러움도 권위 상실도 아니다. 적까지도 모두 내 편으로 만드는 가장 인간적 '전략'인 셈이다.

사과는 소통의 시작이기도 하다. 내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가 내 입장에 서 있음을 발견할 때, 너그러워진다. 뻔뻔하게 잘남만을 주장하기보다는 "사실은 나도…"라며 내 잘못도 말한다. 그 순간 오해와 갈등의 벽은 무너지고 마음의 대화가 시작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사과가 진심이어야 한다. 또 시의적절해야 한다. 너무 이르면 가벼워 보이고, 너무 늦게 떠밀리듯 하면 초라해 보일 뿐 별 효과가 없다. 상대가 '용서'할 마음이 있을 때여야 한다. 김 감독이 좋은 예다. 역시 야구 감독답게 그의 타이밍은 기가 막혔다. 당사자에게만 책임을 묻지 않은 '결장' 과 '2군행'이란 카드도 진정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김 감독은 '신하가 잘못하면 군주가, 선수가 잘못하면 감독이 마땅히 그 책임을 지는 모습을 과감히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과에서 어설픈 변명이나 핑계는 오히려 화만 키운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죄송하다"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것도 기자회견이라는 공식적 자리에서, 직접.

토 달지 않는 진정성이 중요

불교계의 분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 동안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한 직접 사과와 당사자인 어청수 경찰청장 해임 요구를 대통령이 들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를 요구한다는 것은 여전히 '용서'해 줄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으로서는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도 마음을 얻을 기회가 있다는 것이. 그런데도 사과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때마침 9일 '국민과의 대화'란 좋은 기회까지 생겼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불행한 경험은 '촛불시위' 한번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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