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 연예기자 1호 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23> 클래식의 경음악 편곡, 안된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 연예기자 1호 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23> 클래식의 경음악 편곡, 안된다?

입력
2008.09.02 02:17
0 0

원더걸스의 ‘텔미’와 장윤정의 ‘어머나’를 김가영이 비올라로 연주를 했다. 플루트 연주자 최은정은 주현미가 노래한 ‘신사동 그 사람’등 3곡을 코리안 심포니와 협연했다. 또한 피아니스트 박종훈은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와 윤도현 밴드의 ‘사랑 Two', 김흥국의 ’호랑나비‘를 피아노 협주곡으로 택했다. 또 서태지는 로얄 필하모닉과 함께 협연을 기획해서 대단히 큰 호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정통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이 넘나드는 이른바 크로스오버라든가 퓨전 스타일, 그리고 협연 등은 새로운 장르가 더 이상 아니다. 테너 가수 박인수 교수가 정지용 시인의 시에 김희갑이 곡을 붙인 ‘향수’를 대중가수 이동원과 함께 노래했다고 클래식계에서 발끈한 적이 있었으나, 그것도 이젠 다 지나간 일이다.

테너나 소프라노등 클래식 가수들이 대중음악을 무대에서 부르고 디스크를 취입 하는 일이 많다. 반면에 대중가수들이 클래식 소품들을 편곡해서 부르는 경우도 많다. 어떤 경우이든지 전혀 색 다른 맛으로 다가와 신선한 느낌을 주는 매우 좋은 시도라고 환영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클래식이다. 대중음악은 얼씬도 하지말라!”며 경계선을 그어 놓았던 일이 39년 전에 일어나서 크게, 아주 크게 말썽이 난적이 있다.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우습게 생각 할지 모르지만 그때는 정말로 심각했다. 어떤 사정인지, 내가 취재해서 기사를 썼던 신문(주간 한국)을 찾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1969년에 일어난 일이다. 두 사람의 가요 작곡가가 클래식 음악을 과감하게 편집해서 한 사람은 경음악으로 발표했고, 또 한 사람은 대중가수가 노래로 부르게 만들었다. 지금, 21세기의 관점으로는 “그게 무슨 말썽 일까?”라고 여기겠지만, ‘제사상이나 차례상 차림 음식(제수)을 자장면 배달하듯이 철가방으로 들고 오는 일을 상상도 못할 때’인지라, 이것이 큰 사건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일단 그 시대로 돌아 가 보자.

아무리 음악을 모르고, 클래식이라면 코를 고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베토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고, 그의 교향곡 제5번 ‘운명’을 안 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건 중학교, 아니 초등학교 학생도 아는 음악이다. 그 ‘운명’ 제 1악장 인트로 부분의 제1과 제2주제를 가요 작곡가 홍현걸씨가 편곡을 해서 경음악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당시 유행하던 소울(Soul)풍으로 편곡을 했고, 기타리스트 조방씨가 애들 립 형식으로 20여 소절을 연주하여 취입했다.

편곡을 한 홍현걸씨는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고려 심포니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했으며, 고등학교 음악 교사를 하다가 대중가요 작곡가가 된 실력파이다. 최희준의 ‘엄처시하’, ‘샐러리맨 출세작전’, 그리고 위키리가 부른 트로트 가요 ‘눈물을 감추고’등을 작곡해서 히트를 쳤다.

그런 그가 ‘운명’의 운명을 순식간에 바꿔 놓고 나서, 본인도 신경이 쓰였는지 팬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동아방송 라디오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인 <밤의 그룹사운드> 시간에 몇 차례 방송을 내 보냈다. 반응이 어땠냐고? 한 마디로 “난리 법석”이었다. 욕을 해 오는 사람, 잘 했다고 박수 치는 사람 등등--자세한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서 사건이 또 하나 터졌다.

김상희가 부른 ‘대머리 총각’, 이 시스터즈의 ‘목석같은 사내’, 양미란의 ‘당신의 뜻이라면’등을 작곡한 정민섭씨는 경희대 음대를 졸업하고 뒤늦게 대중음악계로 들어 왔는데, 폴란드의 여류 작곡가 바다르체프스카의 피아노곡으로 너무너무 유명한 ‘소녀의 기도’를 그이 나름대로 편집해서 가요로 만들었다. 가수는 연세대 출신으로 청순한 이미지의 최영희였다.

자! 음악계의 반응을 살펴보자. 1969년 12월 14일자 <주간한국> 신문에 실린 음악과 방송계 원로들의 의견을 간추려서 전재한다.

*나운영씨 (연세대 음대 작곡과장)=고전음악과 경음악은 서로 장르가 다르다고 본다. 이런 행동은 경음악인들이 경음악의 순수성을 스스로 모독하는 처사이다. 경음악에는 그것대로의 길이 따로 있다.

*김성태씨 (서울대 음대학장)=정도가 지나치고 방법이 순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가의 작품을 끌어 들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런 일은 음악에 관한 일이 아니라, 윤리에 관한 문제다.

*김희조씨 (KBS 관현악단 지휘자)=정신적으로 느껴온 클래식을 감각적으로 느껴 보자고 경음악화한 것이 무슨 큰 시비가 되겠는가?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는 정도가 아닐까. 원작 모독이라고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멜로디가 몸이면 편곡은 옷이다.

*모기윤씨 (방송윤리위 사무국장)=편곡의 묘를 잘 살리느냐 못 살리느냐에 따라 결정이 날 것인데, 명곡의 본?이미지를 살리면서 시도하면 그런대로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나치게 관능적으로 흐르는 것은 안된다.

*최경식씨 (경음악 평론가)=독일에선 락 비트로, 프랑스에선 익살스런 가사를 넣어 남성 보컬이 ‘운명’을 불렀다. 너무 심각한 표정 보다는 이런 시도도 재미있지 않은가? 아직 클래식이 생활화 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는 자칫하면 고전음악에 대해 냉소적이 될 수도 있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클래식을 아는 사람이 경음악화 한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이상 다섯 분의 의견을 간추려서 소개했다. 대충 40년 전의 일이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뀐 것 같지만, 요새 강산은 10년씩 기다려 주지를 않으니까 네 번이 아니라 열 번쯤 바뀐 세월이다. 지금의 안목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때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를 사는 젊은이들의 의견은 어떨까?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