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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원정대 에베레스트 남서벽 재도전 2일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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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원정대 에베레스트 남서벽 재도전 2일 대장정

입력
2008.09.02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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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31일 '박영석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는 네팔로 향했다. 1977년 한국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기념해 떠나는 출정이었고, 히말라야에 처음으로 코리안 루트를 뚫어 선배들의 위업을 기리고자 했던 원정길이었다.

그리고 2008년 9월2일 '박영석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가 다시 히말라야 설산으로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지난 등반의 못다 이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걸음이고, 당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오희준, 이현조 대원의 뜻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한 장정이다.

박영석(45) 대장은 "작년엔 코리안루트를 내겠다는 내 목표가 우선이었다면, 이번은 두 명의 후배들을 기리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라고 했다. 지난번 도전이 77원정대에 바치는 헌정등반이었다면, 이번은 두 고인에 바치는 헌정등반인 것이다.

■ 왜 남서벽인가

피라미드를 닮은 에베레스트(8,848m) 산은 서릉 북릉 북동릉 남릉 남동릉 등 5개의 능선이 뻗었고, 이 지형에 현재 15개의 등반루트가 개척돼 있다. 대부분의 원정대들은 1953년 영국원정대의 힐러리가 올랐던 남동릉 코스로 정상에 도전하고 있다.

박영석 원정대가 또 다시 도전하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은 정상까지 수직 고도 2,500m에 달하는 깎아지른 절벽. 경사가 급해 눈도 잘 쌓이지 않는 검은 암벽이다. 남서벽을 제일 처음 오른 이들은 75년 영국 크리스 보닝턴 팀이다. 이후 러시아 팀이 새로운 길을 냈고 지금까지 이 2개의 코스만 뚫려있다.

박 대장에게 남서벽은 에베레스트를 처음 올랐을 때부터의 꿈이었다. 박 대장은 "그 동안은 지구 3극점, 히말라야 14좌, 7대륙 최고봉 등정 등 산악 그랜드슬램이라는 목표를 위해 올랐던, 하고싶다기 보다는 해야만 했던 도전이었다.

2005년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이후 내가 진짜 넘고 싶었던 것에 도전하게 됐다. 그 하나가 2006년 성공한 에베레스트 횡단 등반이었고, 또 하나가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였다"고 말했다.

박 대장의 남서벽 도전은 이번이 4번째. 1991년에 처음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도전했을 때 등반 도중 150m 가량을 추락, 죽다 살아났다. 만신창이가 된 위급한 상황, 다행히도 캠프2에 있던 미국팀에 의사가 있어 응급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93년 남서벽 재도전때도 8,500m까지 올라갔다가 발길을 돌렸다.

깎아지른 벽에서 샤워처럼 쏟아지는 신설을 이겨낼 수 없어서였다. 결국 남서벽을 포기하고 남동릉으로 루트를 바꿔 올랐다. 그때 아시아 최초 무산소 에베레스트 등정의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작년에는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동고동락했던 동지 둘을 남서벽에서 잃었다. 박 대장은 "남서벽의 수업료는 너무 큰 대가를 요구했다"고 했다.

김영도(84) 77년 당시 원정대장은 "에베레스트 남서벽은 전세계 산악인의 꿈이다. 남서벽 코리안 루트 도전은 지구 3극점 완등에 버금가는 한국 산악사의 큰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서벽에서 목숨을 잃은 고 오희준 부대장도 "히말라야 14좌 완등보다 남서벽 도전에 더 큰 의미를 둔다"고 했었다. 당시 오 부대장은 히말라야 14좌중 4곳만 남겨뒀었다.

■ 지난 실패를 교훈 삼아

원정대는 이번에 새로운 장비로 포타레지(portaledge)라는 절벽 텐트를 준비했다. 텐트 맨 윗부분만 절벽에 고정시키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거대한 벽에서 잠잘 수 있는 허공침대인 셈이다. 남서벽이 깎아지른 절벽이다 보니 텐트를 칠 장소를 찾기 힘들어 준비한 장비다. 지난번 도전이 전해준 소중한 지혜다.

최근 에베레스트 도전은 보통 봄에 이뤄진다. 여름 몬순이 길어져 가을엔 기상 조건이 나쁘고 눈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장은 남들 다 꺼리는 가을을 선택했다. 많은 쌓인 눈을 이용하기 위함이다. 깎아지른 남서벽에 눈이라도 있으면 캠프를 만들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작년 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는 전세계에서 몰려든 40여개의 팀으로 텐트 칠 장소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 중 한국의 원정대만도 4팀에 이르렀다. 이번 도전에는 그 넓은 쿰부 빙하 위의 베이스캠프를 박영석 원정대만 독차지 한다.

가을에 등반하는 유일한 원정대이기 때문이다. 봄의 도전이었다면 함께 온 한국 원정대끼리 정보도 교환하고, 공수해온 맛난 음식도 나눴을 것이다. 두 고인을 기리는 엄숙한 추모등반은 더욱 고독한 도전이 될 것이다.

지난번 도전 때 가장 애를 먹였던 것은 등반을 도울 현지 셰르파들의 반란이었다. 그들은 남서벽 도전에 미리부터 겁을 먹었다. 한창 캠프 구축에 바쁠 때 너무 위험해 돈도 싫으니 그냥 내려가겠다고 시위를 벌였다.

박 대장이 "길은 우리가 뚫을 테니 뒤에서 짐만 올려달라"고 달래고 보수도 인상해준다고 했지만 셰르파 상당수가 무정하게 등을 돌리고 내려가 버렸다. 원정대원 6명과 셰르파 4명만 남아 나머지 공격에 임했던 도전이었다.

당시 셰르파 대장은 박 대장과 오랫동안 원정을 함께 했던 동지였기에 배신감은 더욱 컸다. 이번 등반을 위해 박 대장은 경험 많은 셰르파를 물색하는데 많은 공을 기울였고, 필요한 인원을 충분히 확보했다.

■ 두 영혼을 위한 헌정 원정길

원정대의 출발은 간소하다. 이미 4명의 선발대가 지난달 25일 카트만두에 입성했다. 원정대는 그 흔한 발대식도 없이 장도에 오른다. 박 대장은 "그 사고를 치고 꽹과리를 치고 나팔 불며 떠날 수 없지 않느냐"고 했다. 그의 앙다문 입술에선 날선 긴장감이 흘렀다.

지난해 두 고인을 가슴에 묻는 영결식에서 대한산악연맹 이인정 회장은 "꽃이 지면 열매를 맺는 법. 젊은 청춘을 산에서 꽃피우다 졌으니 그 열매 반드시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굳게 뿌릴 것"이라고 애도했고, 오 부대장의 형인 희삼(41)씨는 "고인의 뜻이 이루어지길 선후배에 간곡히 부탁 드린다"고 했다.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그들의 꿈을 기필코 꽃 피우기 위해 산악 선후배들이 떠난다. 두 영혼을 짊어진 박영석 원정대가 히말라야 설산의 빙벽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는다.

■ 박영석 대장과 함께 떠나는 등반 대원들

박영석(45ㆍ골드윈코리아 이사) 대장은 세계적인 산악인이다.

2005년 5월 박 대장은 북극점 원정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최초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산악 그랜드슬램이란 히말라야 8,000m 급 14좌 완등,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 에베레스트와 북극, 남극 등 지구 3극점 도달을 모두 이루는 것을 말한다.

박 대장은 지난해 11월 산악인 선후배들과 에베레스트를 찾아 산자락에 고 오희준, 이현조 대원을 기리는 돌탑을 쌓고, 추모 동판을 설치했다.

올해 5월에는 중국 쓰촨성의 아무도 오르지 않았던 미답봉을 올라 고인들의 이름을 딴 '희조피크'란 이름을 명명했다. 중국 등산협회가 최초 등반자가 봉우리 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했고 박 대장은 가슴에 묻어둔 후배들의 이름을 산에 새겼다.

오희준, 이현조 대원이 빠진 빈 자리엔 또 다른 믿음직한 산악인들이 채웠다. 이번 원정대는 박 대장을 비롯해 모두 11명.

홍성택(41) 대원은 박 대장의 2005년 북극점 도달 때 오희준 대원과 함께 박 대장 곁을 지킨 절친한 산악 파트너. 1993년 에베레스트 도전을 시작으로 94년 남극점 도달, 95년 에베레스트 등정, 2005년 북극점 극점 도달로 지구 3극점을 달성했고, 2007년 봄에는 히말라야 로체 남벽(8,516m)에 도전했다.

이형모(29) 대원은 지난해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을 함께 했던 젊은 산악인이다. 2006년 에베레스트 북동릉을 등정했고, 2007년 박 대장의 베링해 횡단을 함께 했다.

지난해 기자가 베이스캠프에서 보고 느낀 이 대원은 '많이 먹고 많은 힘을 쓰는 스테미너의 사나이'다. "등반을 잘 하려면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아껴야 한다"는 지론으로 매일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새천년체조로 몸의 긴장을 푸는 맑은 눈빛의 청년이다.

김영미(28) 대원은 원정대의 홍일점이자 원정대의 막내. 지난해 남서벽 도전을 함께 한, 여느 남성 산악인 저리 가라 할 정신력과 체력을 지닌 여전사다.

지난해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에 이어 올해 5월 에베레스트 남동릉을 등정하며 7대륙 최고봉 완등의 대기록을 세웠다. 한국인 여성산악인으로는 오은선(42)씨에 이은 2번째 대기록이다. 오씨가 완등한 건 38세로 10년을 앞당긴 기록이다.

진재창(42) 대원은 1993년 에베레스트 도전을 시작으로 히말라야를 꿈꿔온 산악인이다. 95년 에베레스트 북동릉을 등반했고, 98년 레인봉(7,134m)을 등정한 데 이어 지난해는 안나푸르나(8,091m) 정찰 등반을 했다.

강기석(30) 대원은 2003년 히말라야 로체 등정, 2004년 알래스카 매킨리(6,194m) 등정, 2006년 로체 남벽 등반, 2008년 7월 파키스탄 가셔브룸2봉(8,035m) 등반 등의 경력을 지녔다.

식량을 담당하는 신동민(34) 대원은 1995년 알프스 3대북벽과 드류를 등정했고, 2000년 에베레스트 북동릉을 등반했다. 이어 2001년에는 푸모리(7,014m) 동벽 등반, 지난해에는 로체 남벽을 등반했다.

송준교(35) 대원은 2002년 엘부르즈(5,645m) 등정, 2003년 파미르레린봉(7,145m)을 등정했으며, 2007년에는 홍 대원과 함께 로체 남서벽을 등반했다.

박상문(31) 대원은 2004년 일본 북알프스 병풍암을 등반했고 그 해부터 대한민국 문화원정대 국토순례를 진행하고 있다.

이한구(40) 대원은 지난해 남서벽 도전때 함께 했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1996년, 2003년 칸텡그리(7,040m) 등반에 참여했고, 알타이산맥 고비산맥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정기현(48) SBS 촬영감독도 원정대와 함께한다. 1999년 박 대장과 함께 칸첸중가(8,586m) 등반을 함께 했었다.

■ 박영석 대장 주요 등반기록

▲ 세계 최단기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등정(8년 2개월)

▲ 세계 최초 1년간 히말라야 8,000m급 최다 등정(6개봉)

▲ 아시아 최초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93년)

▲ 동계 랑탕리 세계 초등(89년)

▲ 세계 최단기간 무보급 남극점 도달(2004년)

▲ 인류 최초 산악 그랜드슬램 달성(2005년)

▲ 단일팀 세계최초 에베레스트 횡단등반 성공(2006년)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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