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검사 선서'를 만들었다. 선서문은 초임 검사들이 '용기있는 검사' '따뜻한 검사' '공평한 검사' '바른 검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다. 선서는 검사 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이 범죄를 척결하고 정의를 세워야 하는 검사로서의 사명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 취지에는 백번 공감한다.
그런 다짐이나 의지조차 없다면 고뇌와 고통 속에서 범죄와 씨름해야 하는 검사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검사 선서문을 끝까지 읽고 나니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다. 그런 허전함의 이유는 선서문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게 된 다음에야 알게 됐다.
법무부가 검사 선서문을 작성한 과정은 이렇다. 3월 법무부 업무보고 때 이 대통령이 '한마디'했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것으로 아는데, 검사도 평범한 공무원과 다르게 선서를 했으면 좋겠다." 법무부는 즉시 검사 선서문 성안 작업에 착수했다. 검사들을 대상으로 선서 문구를 공모하고, 미국 프랑스 중국 등 검사가 선서를 하는 나라의 선서문도 수집했다. 초안을 만들어 유명 소설가, 국어학자, 언론학자들의 자문까지 거쳤다.
검사들이 명예를 걸고 평생의 금과옥조로 삼을 선서를 만드는 일에 법무부가 그처럼 공을 들인 것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대통령 지시로 시작됐기 때문일까. 법무부는 가장 중요한 내용을 선서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루겠다는 다짐이나 최소한 그런 의지를 담은 문구 말이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은 시대와 이념을 떠나 검찰에게 요구되는 최대 과제인데도 초임 검사가 다짐할 선서에서 누락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검찰은 참여정부 5년 동안 늘 권력 핵심과 미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정권 초기, 권력 핵심의 검찰 개혁 시도는 참여정부 내내 권력과 검찰이 일정 거리를 두고 팽팽한 긴장과 갈등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시발점이 됐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적 중 하나가 검찰과 갈등을 빚은 것"이라는 농반진반의 말까지 회자됐고, 심지어 청와대에서는 "검찰과의 대화 통로가 너무 없다"는 탄식 섞인 언급까지 나왔다. 검찰이 정치적 독립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후 6개월이 지난 지금, 권력과 검찰의 관계는 어떨까.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이전의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법무부와 검찰 상층부가 권력 핵심과의 '코드 맞추기'에 나선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정권의 공기업 개혁 드라이브에 맞춘 공기업 비리 수사 착수, 촛불집회 초기의 강경 대응 천명,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란을 초래한 PD수첩 수사, 광고중단 운동 가담 네티즌 수사, PD들에 대한 해묵은 비리 수사 재개, 정연주 전 KBS 사장에 대한 수사, 무자격 전현직 재벌 총수들에 대한 사면 등이 단적인 예다. 어느 것 하나 정치ㆍ사회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데도 검찰은 권력에 유리한 편에 섰고, 또 그것을 정당화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정권이 바뀌었다 해서 조금씩 쌓여가던 검찰 독립을 향한 노력들을, 또 그런 노력에 더해진 박수들을 무위로 돌려선 곤란하다. '권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한다'는 비판이 오해라고 말하고 싶다면, 법무부는 지금이라도 검사 선서에 '권력으로부터의 독립'문구를 넣어주기 바란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향한 첫걸음일 것이다.
황상진 사회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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