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역시 달변이었다.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논리 정연한 답변이 막힘 없이 이어졌다. 말 한 마디나 두 마디 사이사이로 고막을 울리는 호쾌한 웃음이 추임새로 끼어 들었다. 그의 말 속엔 '개념 무탑재'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부 연예인들과 나는 다르다는, 신념과 목표가 뚜렷한 '배우'라는 자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2006년 온 국민을 대상으로 '꼭짓점 댄스'를 전수했고, 예능프로그램 섭외 1순위로 줄곧 거론돼 온 '전국구 엔터테이너'. 지금은 SBS 예능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 의 '패밀리가 떴다' 코너서 '김계모'라는 별명으로 '예능 본색'을 다시 발휘하고 있는 김수로와의 인터뷰는 불에 타는 얼음덩어리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떠올리게 했다. 일요일이>
5수(修)끝에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하고, 대학로의 명문극단 '목화'서 기본기를 다진, 집념과 실력으로 뭉친 이 사내는 애초에 코미디나 예능과는 거리가 멀었다. "연극을 하던 때는 리어왕 등 비극의 주인공을 도맡았고 대학시절 600여 학생 관객을 울릴 정도"로 무명시절 그의 연기는 희극보다 비극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학교위신 떨어뜨리며 까불거나 출석률이 안 좋은 후배들의 인사는 받지 않을 정도"로 고지식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그의 구박을 단골로 받고 있는 학과 후배 이천희는 그런 그의 풍모를 익히 알고 있기에 프로그램 속 그의 모습이 진심인지 '설정'인지 구분을 아직 못한단다.
하지만 학창시절 후배들을 집합시키면 "너희들을 울부짖게 만들리라"식의 지극히 희극적인 연극적 대사로 겁을 줬다니…. 그 때 그의 몸 속에 벌써 '예능 바이러스'가 잠복해 있었나 보다.
코믹과 진지, 이율배반적 양면을 지닌 배우지만 그의 영화이력은 <재밌는 영화> , <주유소 습격사건> , <달마야 놀자> , <흡혈형사 나도열> 등 코미디에 편중돼 있다. 흡혈형사> 달마야> 주유소> 재밌는>
추석연휴를 겨냥, 11일 개봉하는 박광춘 감독의 <울학교 이티> 도 김수로의 개인기를 전면으로 내세운 학원코미디물. 그는 뇌보다 근육에 더 의존해 살아가다 구조조정 위기에 처하는 체육교사 천성근 역할을 맡아 관객들의 배꼽을 노린다. 울학교>
변신에 대한 욕심도, 현실에 대한 불만도 있을만한데 그는 당당하면서도 담담했다. "저우싱츠(周星馳), 짐 캐리, 아담 샌들러 이런 외국 배우들도 10년 넘게 코미디로 사랑 받았으면서도 계속 코미디를 해요. 저도 그들처럼 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물론 저도 다양한 장르에서 인정 받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게 오는 A급 시나리오는 모두 코미디에요."
그는 정작 "예능 프로그램은 진짜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좌중을 휘어잡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영화배우라는 직업의 한계 때문이다. "막 놀아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굴뚝 솟아나지만 참는다"고 했다. "예능 프로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배우로서 소모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김계모라는 설정된 캐릭터로만 승부하려 하죠."
예능 프로그램은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면서도 '웃기는 영화'에 대해선 애정을 감추지 않는 그의 코믹 연기관은 과연 무엇일까.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까분다'입니다. 지혜와 지식이 담긴 가볍지 않은 코미디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영화도 많이 보고 틈만 나면 책과 신문을 읽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능 프로그램에서 '해는 어느덧 어둑어둑' '때는 바야흐로' '그 즈음 하여' 등의 문어체를 많이 쓰게 되더라구요."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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