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50년을 살았습니다. 내 후기(後期) 문학을 행여 그동안의 결산으로 보는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노년의 원만함, 포용력 같은 것에 안주하며 내 삶이 잠들 일은 결코 없습니다. 내 광기와 질풍노도는 계속될 것입니다.”
등단 50주년에도 싱싱하기만 한 고은(75) 시인의 예술적 자궁에서 두 신생아가 태어났다. 신작시집 <허공> (창비 발행)과 그림전(展) ‘동사를 그리다’. 시집엔 <부끄러움 가득> (2006) 출간 이후 발표해온 107편의 시가 수록됐고, 4~12일 서울 중구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그림전에는 시인의 아크릴화 37점 및 붓글씨 19점이 걸린다. 부끄러움> 허공>
시인은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몇 권째인지 셀 수도 없는 시집이지만 처음 받아들 땐 여전히 가슴이 벌렁벌렁 뛰며 방금 시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며 출간 소감을 밝혔다. 그는 수록시들에 대해 “시 하나하나 맘대로 가서 놀아라 하는 기분으로 쏟아낸 것”이라며 “시집을 묶는 주제 같은 건 당초에 포기했다”며 특유의 분방함을 표현했다.
시인은 “시를 써온 50년 동안 한국 근대시 100년은 내게 역사가 아닌 자유였다”면서 “내 시는 낭만주의, 사실주의, 주지주의, 전통주의 등 온갖 사조와 더불어 가면서도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문단이 사회 전반의 경제 우선주의에 물들어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그렇게 시가 죽을 만큼 죽어야 시 정신의 새로운 부활과 신생을 기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회를 통해 ‘화가 고은’으로 변신하는 시인은 지난 여름 17일 동안 평택의 한 작업장에 출퇴근하며 그림 작업에 몰두했다.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기 전까지 화가를 꿈꿨다는 그는 “소설가 정도상에게 지나가는 말로 ‘그림 좀 그려볼까’ 했던 게 일이 커졌다”면서 “<만인보> 탈고 등 닥친 일들을 마치고 내년쯤 다시 그림을 그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름 물감을 화면 가득 발라 물질적으로 충일한 유화를 그리면서 내 정신 한구석에 자리잡아온 동양적 여백미를 배반하고 싶다”고 말했다. 만인보>
시인은 자신의 왕성한 창작열이 신명에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한(恨)과 더불어 한국인의 근본 정서를 이루는 것이 흥(興)이고, 흥의 원소가 신명”이라며 “신명이 있어 내 영혼은 늘 시끄럽고자 하는, 시시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열정으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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