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KBS의 찌푸린 새 얼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KBS의 찌푸린 새 얼굴

입력
2008.09.02 02:17
0 0

KBS에 새 사장이 들어섰다. 지난 일은 입에 담고 싶지 않다. 고개를 뒤로 돌리면 우리 사회의 품격 자체에 대해 한숨이 나온다. 이제 새 사장을 뽑았으니 과거는 묻고 새 팀이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새 사장은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을 최대 과제로 꼽았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공영방송이라면 공정성을 확고부동한 대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는 늘 불공정 시비에 휘말렸다. 그런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정연주사태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공정성 확보 다짐한 신임 사장

공정성이란 무엇인가?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공정성은 세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가 사실성이다. 언론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해야 한다. 사실이란 무엇인가? 워터게이트 취재로 일약 유명인사가 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한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적이 있다 재판장이 문제가 된 기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그 기사가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이라고 답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한다는 것은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취재해 그것을 사실과 부합하게 재정리하여 보도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늘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 대신에 '이용 가능한 최선의 버전'으로 사건을 둔갑시키곤 한다.

둘째가 불편부당성이다. 서재필 선생은 독립신문 창간사에서 '우리는 첫째 편벽되지 아니한 고로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다'고 천명했다. 그 뒤로 많은 신문이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사시(社是)로 내걸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정치적 독립성을 견지한 언론은 거의 없다. 하나같이 특정 정파의 앞잡이가 되어 이전투구에 몰두하고 있다. 정치세력끼리 벌여야 할 싸움조차 언론이 편을 갈라 대신한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미국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언젠가 "개인의 성격을 공박하고 사생활까지 추적하며 온갖 약점과 잘못을 폭로하기 위해 원칙을 포기한다"고 미국 언론을 비난했다. 지금 우리 언론을 두고 하는 말같이 들린다. 정파가 같으면 편들어 감싸주고 정파가 다르면 때리고 부수는 건 토크빌시대의 미국 언론 못지않다. 이런 지독한 정파성을 극복하지 않는 한 공정성도 공영성도 구현할 수 없다. KBS를 영세 중립화하자는 KBS 출신 이계진 의원의 발의는 비록 원칙론을 벗어나지 않은 것이지만 현 시점에서 참으로 참신하게 다가온다.

셋째가 균형성이다. 언론은 이해 당사자에 대해 균형 있게 보도해야 한다. 찬성하는 쪽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반대하는 쪽의 이야기도 청해 듣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대등하게 보도해야 한다. 물론 이해 당사자의 격도 맞추어야 한다. 균형성은 이런 대등한 대우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언론은 균형성을 바탕으로 한 걸음 나아가 이해 당사자들이 공통의, 타협이 가능한 영역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사회는 분열이나 길항을 이겨내고 통합을 지향하게 된다.

고민하며 새 공영방송 만들길

사실성, 불편부당성 및 균형성을 핵심 요소로 하는 공정성은 책임자의 의지 하나만으로 이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공정성을 추구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우선 이사회의 구성방법부터 고쳐야 한다. 이사를 모두 여야 정당이 추천한 사람으로 채우면 그 이사들이 추천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꼭두각시 노릇이나 할 게 자명하다. 그런 체제에서 공정성이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수밖에 없다.

이병순 사장은 나름대로 원칙을 지닌 사람 같아 보인다. 잔뜩 찌푸린 얼굴에서 그의 고민, KBS의 고민이 묻어난다. 이런저런 평을 종합하면, 그는 자리를 탐하기보다 이름을 택할 것 같다. 시대가 그를 사장 자리에 앉혔다면 이제 그는 새 시대를 열어 사회에 보답해야 한다.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