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우리 부부는 어김없이 싸운다. 주중에는 서로가 얼굴 볼 시간이 적은데다, 아침 7시에 나가 자정이 넘어야 돌아오는 남편을 내가 불쌍해 참아 주어서 그냥 저냥 넘어간다. 그러나 토ㆍ일요일은 집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다툴 일이 많아진다. 글쎄, 다투기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싶다.
오늘도 남편, 물 마시려다 냉장고에서 며칠 전 무쳐먹고 남은 콩나물반찬 통을 발견하고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봐라, 봐라…. 이 뭐꼬? 살림하는 여자가. 냉장고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도 모르고…." 그렇지 않아도 조금 남은 콩나물 무침이 아까워 잠깐 고민을 했었다. '버릴까, 말까? 에이, 그래도 참기름에 고춧가루, 깨소금, 간장까지 다 들어갔는데 버리면 죄받지'하는 생각에 넣어두고는 깜박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이~씨, 그냥 과감히 버리는 건데…."
닦아 세우는 남편 앞에 암말 않고 죄없는 손가락만 빙빙 돌리며 고개를 외로 꼬고 서 있었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반항은 한다. 남편의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속으론 '아~, 고만 좀 해라. 마이 했다 아이가…'해가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른다.
지난 주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빠닥빠닥 안 치운다고 면박을 들었다. 딴에는 머리를 굴려 음식물 쓰레기통을 세탁기 옆에 몰래 박아뒀다가 발각돼 천하무식한 무수리 취급을 받았다.
어제도 별것 아닌 일에 또 싸웠다. 점심에 얼큰한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는데 마침 삼겹살이 보이기에 숭덩숭덩 썰어넣고 맛나게 찌개를 끓였다. 애들은 TV 보다가 냄새에 이끌려 몇 번을 침 흘리며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큰방에서 혼자 TV보던 남편, 만삭이 된 배를 이끌고 행차하시더니 아니나 다를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치찌개에 누가 삼겹살을 넣어서 끓인다카더나!" 나도 화가 잔뜩 묻은 소리로 투욱 뱉었다. "난 김치찌개에 삼겹살 넣어도 맛있더라."
똥그랗게 눈을 뜨고 달려들었더니 "그럼, 니나 그렇게 먹어라. 나는 고추장 넣고 고춧가루 넣어서 볶아 먹을란다. 내가 왜 깻잎을 사왔는지 니는 모르나?" (남편은 삼겹살을 꼭 깻잎에 싸서 먹는 버릇이 있다) "… … 삼겹살 남았어. 그 걸루 볶아 줄께."
큰 방에 들어가서 열 받은 오랑우탕 마냥 씩씩대며 가슴까지 탕탕 쳐대는 남편의 한숨소리가 10m는 족히 떨어진 부엌까지 생생히 들려온다. 굳이 해석하자면 "아이구, 속 터져! 내가 저런 여자랑 13년을 살고 있으니, 참 용타. 어따 버리지도 몬 하고…. 눈치라곤 씻고 찾아봐도 없는 완전 촌닭에 무식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여편네 같으니라고. 덜 생겼으면 눈치라도 있어야 될끼 아이가. 무시라… …."(내가 간호사가 되질 않았더라면 '동물마음 분석 해설가'로서도 대성을 했을 듯 싶다)
아니, 김치찌개에 삼겹살이면 어떤가. 꼭 찌개용 돼지고기 운운하는 남편이 나는 더 웃겨 돌아가시겠다. 제 기준에 맞지 않으면 몰상식한 사람 취급하는 저 사람에게 팔뚝만한 말뚝으로 똥침이라도 시원하게 푸욱~ 찌르고픈 마음이 지글지글 솟는다.
어쨌든 난 성난 오랑우탕을 잠재우기 위해 남은 삼겹살에 깻잎을 ?? 넣고 양파, 새송이 급히 넣은 뒤 다글다글 볶았다. 미운 마음에 땅바닥에 떨어진 삼겹살 한 조각을 씻지도 않고 그냥 프라이팬에 툭 던져 넣었다. 얼굴에서 육수가 뚝뚝 떨어지도록 요리하면서, 말뚝이 똥꼬에 박힌 남편의 우스꽝스런 엉덩이를 상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렇게 해서 보기엔 번드르한, 그러나 나의 화가 드글드글 함께 뒤섞인 삼겹살 볶음을 완성했다.
남편과는 말도 섞기 싫어 애들에게 "아빠, 밥 드시라 해라"했더니 아이들 셋이 큰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아빠 점심 드시래요"아뢰었다. 그런데 "밥 먹고싶은 생각 없다"하는 소리가 싱크대 앞에 선 내 귀에도 또렷이 들렸다. 머리에서 또 뚜껑이 훽! 열렸다. '그럼, 진작에 말을 하든가. 씨이~.' 화를 꿀떡 삼키며 "애들아 우리끼리 밥 먹자"하고는 약 올리듯 일부러 더 허푸허푸 먹는 소리 내가며 늦은 점심을 먹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틱낫한의 '화'를 몇 번씩 탐독하고,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을 '실천편'과 '묵상편'까지 읽으며 나름 깨달음을 얻었건만 어쩔 수가 없었다. 10, 20원에 벌벌 떨면서, 세탁기물 재활용해가며 지금껏 일군 나의 치열한 삶이 뭔 소용이란 말이냐, 이 인간이 나를 이렇게 홀대 하는데….'
분연히 쇼핑을 떠났다! '그래, 내 질러 볼끼다. 사고픈것 다 살끼다~! 마음에 드는 옷들 있으면 모조리 싹쓸이 해 버릴끼다' 잔뜩 독이 오른 채 나갔다.
그렇게 세 시간동안 눈에 불을 켜고 물건들을 찾아 헤맸다. 나의 화를 다스려줄 물건들을. 지난 번 비싸서 못 사준 오천원짜리 애들 필통을 과감히 3개 사고, 장식이 떨어져 꾸질꾸질하던 내 지갑도 사고, 기분 전환용으로 머리끈도 5,000원 주고 사고, 팔찌시계도 만원 주고 사고, 립스틱도 카니발오렌지색으로 사고, 매니큐어도, 귀걸이도 사고, … … . 그런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10만원을 채 쓰지 못했다. 옷은 맘에 드는 게 없었다. 돈은 있는데, 맘에 드는 옷이 없는 기막힘이란.
집에 오니 저녁 8시. 밥솥을 보니 해놓고 간 밥이 쓱 꺼져 있었다. '아이, 깜찍한 남편 같으니라고. 언제 밥을 차려먹었지?' 또 저녁을 달라진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컴퓨터도 느긋하게 하고, 거실에서 애들이랑 장미란의 역도경기를 보고 있는데 큰방에서 버럭 소리가 들렸다. "밥 안 주나! 10시가 다 되었꼬만, 밥 줄 생각도 않고."
저 화상을 우짜면 좋겠습니꺼? 생각 같아선 무좀 걸린 발가락 풍덩 담근 물에다가 국 끓여 주고 싶건만. 우리 남편 주말에만 좀 잡아가 주면 안 되겠십니꺼? 정말 미치겠습니다아~!!
경기도 수원시 화서동 김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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