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이혼 건수가 6만5,100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100건(5%)이 증가했다는 소식이다. 6월의 이혼 건수만 보면 1만 1,300건에 이르러 작년 같은 달의 9,900건에 비해 1,400건이 늘었다 한다. "2006년의 쌍춘년 효과로 결혼 건수가 증가한 이후, 일정한 시차를 두고 이혼 또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론된다"는 것이 통계청의 해석이다.
불행한 결혼 쉽게 해소하는 현상
'이혼의 원인은 바로 결혼'이라는 전문가의 해학적 진단이 아니어도 만연하는 이혼 속에 현대사회 결혼의 역설이 오롯이 드러나고 있는 듯 하다. 오늘날 서구에선 사랑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삼는 "낭만적 결혼"이 성사되기까지 150여 년의 세월이 걸렸으나, 사랑과 결혼의 결합이 뿌리째 흔들리기까지는 25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혼전 성관계의 규범화로부터 이혼율의 급증을 거쳐, 결혼과 출산의 분리 및 혼외 출산의 증가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변화가 폭풍처럼 밀려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온 이야기다.
전통적으로 결혼은 가족의 경제적 자원을 축적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가족의 흥망성쇠가 달린 일이었기에 결혼 당사자의 결정에만 맡길 수 없는 중대사였다. 그러던 것이 점차 배우자 선택 시 부모와 친족의 영향력이 감퇴되고 당사자들의 의지가 보다 중요해지면서, 부부 간의 친밀감, 성적 만족감, 그리고 서로를 향한 충족감이 결혼의 새로운 이상으로 떠올랐다.
그 결과 현대사회 부부들은 만족스런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동안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건강하며 사회적 긴장과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심리적 안정과 평화를 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동시에 행복한 결혼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은 불행한 결혼을 쉽게 해소할 수 있다는 사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역설에 빠지게 되었다. 덕분에 요즘 서구의 가족학자들은 '왜 이혼하는가'를 연구하는 대신 '어떻게 결혼을 유지하는가'의 비결을 밝히는 데 몰두하고 있다 한다.
더욱 심각한 역설은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결혼은 가족의 사회적 책임을 유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부부 중심 핵가족이 출현하게 된 이후 최대의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주장이 있다. 곧 양육 대상인 어린아이들과 부양 대상인 노인, 그리고 간호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 및 환자들이 대표적 희생자라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를 보편화시킨 자본주의 시장경제 또한 '보살핌'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폄하하는 데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과거 가족의 핵심적 기능에는 양육과 부양이 이루어지는 공동체 개념이 공고히 자리하고 있었다. 다만 가족공동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이타심과 양보가 필히 요구되었기에, 이 역할은 자연스럽게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어깨 위에 운명과 팔자라는 이름으로 얹어졌다.
사랑이 신뢰로 승화돼야 하는데
이제 부부중심 가족 하에서는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는 만큼 이혼은 개인의 불운일 뿐 결혼 자체의 실패라 생각지 않는다. 나아가 부모나 친족을 향한 의무보다 개인의 자유과 선택이 중시되는 만큼 어느 누구도 공동체 유지에 필히 요구되는 희생과 양보를 기꺼이 감내하려 하지 않는다.
과거의 규범이 사라진 마당에 새로운 규범은 아직 떠오르지 않은 '결혼의 아노미 상태'가 계속 이어지는 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백년해로하는 부부의 공통점은 낭만적 사랑을 서로를 향한 신뢰로 승화시킨 데 있다는 연구 결과에 귀가 솔깃해오고, 가족이 공동체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선 부부든 부모 자녀든 희생과 헌신, 양보와 이타심을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요즈음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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