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원 지음/사계절 발행ㆍ222쪽ㆍ8,800원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동화 작가 김해원(40)씨의 첫 청소년 소설로, 올해 6회째를 맞은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야릇한 느낌의 제목이지만 여기서 '털'은 머리털을 가리킨다. 고등학교 1학년생 '송일호'가 학교의 폭압적 두발 규제에 맞서 벌이는 투쟁이 작품의 등줄기를 이룬다. 실제 두발 규제 철폐 운동에 나섰던 학생들을 인터뷰해 현장성을 확보한 김씨는 능란한 어휘와 문장으로 시종 이야기의 감칠맛을 유지한다.
이 소설이 단순히 교육 현장에서 여전히 횡행하는 두발 단속을 고발하는 수준을 넘게 하는 것은 주인공 일호가 대대로 이발사로 일해온 집안의 자식이라는 아이러니한 설정이다. 여기엔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이 발동했다. 일호의 고조(高祖)가 고종의 단발령을 받들어 일선에서 상투를 자르던 하급 관리 '체두관'이었으며, 그런 그가 한국 초기 이발소 중 하나인 '태성이발소'를 인수해 대물림했다는 설정이 그것.
종로에 터잡고 한때 번창했던 태성이발소는 다섯 세대를 지나 마포 재개발 지역에서 근근이 꾸려지고 있다. 흰 가운에 가위를 든 사람은 일호의 할아버지. 그의 아들이자 일호의 아버지는 20년 전 가출해 원양어선을 탄 이래 여태 무소식이다.
보름마다 할아버지가 깎아준 짧은 머리로 공부도 곧잘 하던 '범생이' 일호가 두발 규정을 어겼다며 학생 머리에 라이터를 갖다대는 체육 교사에게 대들면서 이야기는 속도가 붙는다. 소리 소문도 없이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정학을 맞은 뒤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아들을 든든히 후원한다. 국가 시책을 거스르면 안된다며 재개발을 찬성하던 할아버지는 세입자들이 처할 사정을 깨닫곤 재개발 반대 시위에 적극 동참한다.
이 '반골 삼대'가 이발 가위를 들고 학교를 찾아가 벌이는 '별(星)머리 퍼포먼스'는 학생 인권을 해치는 현대판 단발령에 대한 유쾌한 저항이다. 그 와중에 사랑을 되찾아가는 일호 가족과, 일호의 단짝 친구 정진과 재현의 이야기가 달콤한 디저트 역할을 한다.
반(反)폭력이 또다른 획일성이 아닌, 진정한 개성의 발현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구절이 작품 말미에 눈에 띈다. "보석은 오랜 세월을 거쳐 비로소 제 빛을 만들어 낸다더라. 멋지지 않냐? 사람도 말야, 보석처럼 세월에 깎이고 닳으면서 제 빛을 찾아가는 것 같아."(215쪽)
'청소년 문학'이란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때인 1997년 런칭해 양질의 국내외 청소년 소설들을 선보여온 '사계절 1318문고' 시리즈는 이 책으로 꼭 50권을 채웠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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