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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조선의 르네상스인 중인' 중인들이 꽃피운 조선의 문예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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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조선의 르네상스인 중인' 중인들이 꽃피운 조선의 문예부흥

입력
2008.09.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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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진 지음/랜덤하우스 발행ㆍ399쪽ㆍ1만9,000원

"내 눈이 날 저버리는구나."(132쪽) 고관이 그림을 그려달라며 머슴에게 말하듯 명하자, 화가 최북(1712~86)은 결국 제 눈을 찔러 애꾸가 됐다. 조선 시대 중인의 기예가 얼마나 뛰어났던지, 그들의 자의식이 얼마나 고고했던지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일화다. 중인 문장가들이 인왕산 자락의 누각에 모여 풍류를 논했던 '송석원 시사(詩社)'에 초청 받지 못한 문인들은 수치심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은 왕실이나 사대부 계급을 보좌하는 한직(閑職) 계층이 아니라 공동체적 자부가 대단했던, 문화적 실체였다. 독특한 문학 양식으로 그들의 위상을 높였던 위항문학이 좋은 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기자 역시 역관 출신의 오세창이었다. 23세인 1887년 '한성주보'에 쓴 '견문사건(見聞事件)'으로 그는 신문 기사의 길을 텄다. 우리나라 서화를 집대성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의 저자이기도 하다. 예술 분야의 업적도 그에 못지않았다.

<달마도> 로 유명한 김명국, 그 제자로서 격에 얽매지 않는 화풍으로 이름 높았던 최북 등에게는 왕실의 부름조차 한낱 허울일 뿐이었다. 또 중인은 의료와 법률, 금융, 외교, 천문 등 실용적 분야에서는 '전문인'으로 대접 받았다.

종기를 외과적으로 치료하는 수술 요법을 처음 개발해 신의(神醫)라는 말을 들은 백광현, 새로운 해시계를 만든 김영, 청렴으로 양반을 부끄럽게 한 호조 아전 김수평, 1891년 미국 메릴랜드주립대를 졸업해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사로 기록된 역관 변수 등은 훌륭한 사례다. 외국어 교육의 혹독함, 뱃길의 위험 따위는 대수롭지 않았다. 저자(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조선의 문예 부흥기였던 정조대왕 시대도 그 뒤안길에서 중인이 르네상스인으로 활동하였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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