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스 울 등 지음ㆍ윤종상 옮김/루비박스 발행ㆍ476쪽ㆍ2만4,000원
"우리 죄악은 끈질기고 참회는 무르구나."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1857년, 노회한 유럽을 '악의 꽃'으로 묘사, 충격에 빠뜨렸다. 한참 뒤, 예언은 적중했다. 세계를 절망 속에 빠뜨린 '악의 꽃' 히틀러는 러시아군에 쫓기다 마침내 1945년 4월 30일, 지하 벙커에서 애인과 함께 권총 자살했다. 1933~1845년까지 그의 행적을 기록한 보고서는 '히틀러 북'이란 이름으로 스탈린에게 넘겨졌다.
2003년, 스탈린만이 볼 수 있었던 그 1급 비밀 문서가 굳이 필요했던 것은 스탈린의 의심증 탓이다. 히틀러 망령에 쫓기던 그의 독촉에 내정위원회(NKVDㆍKGB의 전신)는 그 날 지하 벙커의 일이 있기까지를 구체적으로 재현, 확실한 사망을 입증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413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1949년 12월 29일 스탈린에게 넘겨져 전설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 2003년 러시아 문서기록보관서에서 독일의 역사학자인 두 저자들에 의해 비로소 빛을 쐬게 됐다.
책에는 오랫동안 히틀러의 최측근으로 지냈던 두 남자가 1946~1949년에 걸쳐 토해놓아야 했던 믿을만한 정보가 가득하다. 몇 차례씩 반복해가며 복원한 히틀러의 모습은 정밀한 기록 영화를 보는 듯 하다.
두 사람은 서로 독방에 수감돼 입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었을 뿐더러 부정확한 진술을 했을 경우 고문을 당해야 했다. 4년간의 각고를 거쳐 재구성된 히틀러의 삶은 피와 비명이 가득하다. 하이라이트는 최후의 순간. "히틀러의 옆에는 에바 브라운(애인)의 시신이 놓여있었다. 그의 오른쪽 관자놀이에는 1페니히 동전 크기의 총알 구멍이 나 있었으며 뺨을 타고 두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벽과 소파에는 여기저기 피가 튀어 있었다."(399쪽) 왼발과 오른발 옆에는 권총이 각각 1정씩 놓여 있었다.
1943년 스탈린그라드전 패배 뒤의 모습 역시 그에 못지않다. "(신경성 위경련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는 하루에도 몇 시간 씩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객관적 보고서로서는 손색 없는 사실적 표현이다. "그는 화장실의 물탱크, 비누, 면도크림, 치약 등 모든 곳에 독이 들어있다고 의심했으며 그 모든 것을 철저하게 검사하라고 명령했다. (중략)손톱을 물어뜯었으며 피가 날 때까지 귀와 목을 긁어댔다"(154쪽) .
책에는 동성애적 성향 등 히틀러의 이상 성격도 언급되지만,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지는 않는다. 히틀러를 흥미의 인물로 분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히틀러의 통치 방식에 관심이 높았던 스탈린의 지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철권 공포 통치 방식을 정당화하려 한 그의 의도에 맞춰, 독일군 장교들과 SS(친위대) 지도자들의 반역 행위가 크게 부각된 책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