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구 주안1동 265 'B&C 베이커리' 공장. 13년째 빵 굽는 냄새로 아침을 여는 곳이다. 이 공장 사장이기도 한 제빵사 양병수(72)씨를 만난 28일 오전에도 갓 구운 완두 빵 향내가 코를 찔렀다.
양씨가 하루에 만드는 빵은 평균 1만개. 그는 "교회나 학교에서 단체주문이 밀려드는 날이면 3만개도 만든다"고 말했다. B&C베이커리에서 만들어진 빵은 인천과 서울 지역 소매상과 제과점으로 납품된다.
양씨는 남다른 제빵 철학을 간직하고 있다. 웬만한 일본인 기술자보다 맛 좋은 '화과자'를 만들 만큼 제빵기술은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그가 가장 관심을 보이는 것은 싸게 빵을 만드는 일이다.
그는 "아직도 세상에 굶는 사람이 많은데, 유학파 제빵사가 늘면서 국내 베이커리 시장이 지나치게 고급화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길목 좋은 서울시내에서 고급 제과점을 차리고도 남을 실력이지만, 13년째 남의 땅을 빌려 개당 200원짜리 빵을 되도록 많이 만들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양씨가 빵과 인연을 맺은 것은 17세이던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미성단이라는 제과공장에 입사하면서 부터다. 한국전쟁 후에도 밀, 채소밭을 가꿀 만큼 유복한 집안의 6대 독자였지만, 빵 만드는 게 좋아 부모 반대를 물리치고 제빵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아무도 제빵기술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함께 일하던 선배가 퇴근한 뒤 남겨 둔 밀가루, 설탕, 버터, 이스트 등 원료의 무게를 재는 방식으로 배합비율을 익혔다. 운도 따랐다. 제빵기술을 익히자마자 선배가 그만두면서 제빵 책임자로 '승진'했다.
3년을 미성단에서 일한 양씨는 56년 더 많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상경했다. 서울의 동일제과, 홍콩제과, 덕수제과 등에서 근무하면서 화과자, 월병 제조비법을 익혔다. 79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선진 제빵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제빵기술이 장인(匠人)의 경지에 오를 무렵 양씨는 '맛있지만 비싼 빵'보다는 '싸면서 좋은 빵'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죽을 정량대로 떼어내는 기계, 맛을 내기 위한 재료의 일종인 소를 자동으로 넣는 기계, 밤을 자동으로 까는 기계를 직접 만들었다. 빵 값을 낮추려면 인건비를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올들어 곡물가격이 크게 올랐으나 양씨는 소매상에 납품하는 빵 가격(개당 200원)을 올리지 않았다. 원래부터 2등급 강력분을 사용해 온 것도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다. 2등급은 20㎏당 1만3,000원으로 1등급(2만원)보다 30% 이상 싸다. 양씨는 "2등급 밀가루는 다소 거친 게 흠이지만, 그 정도 차이는 제빵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씨가 아직도 빵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은 규칙적인 생활이다. 매일 아침 7시 출근하고 세 끼를 거르지 않는다. 올해부터는 체력관리를 위해 수영도 시작했다.
아버지의 열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자란 두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다. 첫째는 아버지의 빵 공장에서 7년째 일을 배우고 있고, 둘째는 유명 베이커리에서 근무하고 있다. 양씨는 "일본에 있을 때 창업주 손자가 대학을 나와도 가업인 풀빵 장사를 하는 걸 보고 감동했다"며 "우리 아들과 손자가 '양병수표 빵'의 전통을 이어줬으면 좋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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