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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우리는 매일매일' 낯선 은유와 직유 가득…의미·감각체계 너머 온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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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우리는 매일매일' 낯선 은유와 직유 가득…의미·감각체계 너머 온듯

입력
2008.09.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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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지음/문학과지성사 발행ㆍ134쪽ㆍ7,000원

문법, 의미, 목적을 아랑곳 않는 기상천외한 언어의 조합으로 한국시단의 새 영토를 개척하고 있는 진은영(38)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2003) 이후 5년 만에 출간된 이번 시집은 '멜랑콜리아' '미친 사랑의 노래' '문학적인 삶'으로 각각 이름 붙여진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선 진은영 시의 진풍경이 유감없이 펼쳐진다. '오늘 네가 아름답다면/ 죽은 여자 자라나는 머리카락 속에서 반짝이는 핀과 같고/ 눈먼 사람의 눈빛을 잡아끄는 그림 같고/ 앵두향기에 취해 안개 속을 떠들며 지나가는/ 모슬림 잠옷의 아이들 같고/ 우기의 사바나에 사는 소금기린 긴 목의 짠맛 같고'('아름답다') 아름다움을 설명하려 나열되는 직유들은 사람들이 안주하는 의미와 감각의 체계 너머에 있다.

시인이 즐기는 잔혹동화적 상상력도 여전하다. '거대한 굴뚝'에 갇힌 라푼젤의 긴 머리를 타고 올라온 자는 그녀를 사모하는 왕자가 아닌 잔혹한 살인자다. '벌써 여덟번째야 그가 머리채를 잡고 올라와 내 목을 친 것이, 그가 머리통을 창문 밖으로 던진다 나는 바람 빠진 공처럼 튀어오르며… 소리지른다 여보세요 야옹, 야옹 저도 고양이의 일종이에요 나는 오늘로 아홉번째 태어났다'('라, 라, 라푼젤')

다른 젊은 '난해시인'들과 달리 진씨는 시 속에 자신의 시론을 적극 개진하는 편이다. 그런 시편들을 2부에서 여럿 만날 수 있다. 화려한 색감의 풍경 앞에서 시인은 눈을 감는다. '시-암중모색/ 더듬거리기 위해 눈감기' 그리고 상상한다, '손가락을 핥는 배고픈 개들의 부드러운 혀'를, '단 즙이 다 빨린 레몬 껍질의 짙은 향'을. 하여 시는 '더하면 0이 되는 마법진/ 텅 빈 사각형으로 부는 바람 속에서 세는 감각의 숫자들'이다('Modification'). 의미의 문법을 대체하는 감각의 비문법이자, 습관화된 감각의 전복.

3부는 시인의 사회의식을 비교적 명료하게 담은 시들로 이채롭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쓴다지만/ 우리에게/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 그것이 비극이다/ 세상을 허리 위 분홍 훌라후프처럼 돌리면서/ 밥 먹고/ 술 마시고/ 내내 기다리다/ 결국/ 서로 쏘았다'('70년대産') 시인의 세대의식이 강하게 느껴진다.

시인은 '88만원 세대'를 양산하는 정부 정책이 젊은이들을 위대한 예술가로 키울 고통을 선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꼰다. '폐병쟁이 시인을 위해 흰 알약의 값을 올리고/ 아직도 발자크처럼 건강한 소설가에게는/ 어미소를 먹인 얼룩소를 먹이도록.'('문학적인 삶')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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