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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의보 보장범위 축소, 문제없나/ <하> 건보와 민영의보, 합리적 공존은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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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의보 보장범위 축소, 문제없나/ <하> 건보와 민영의보, 합리적 공존은 불가능한가?

입력
2008.08.2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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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관계자 4명과 손해보험업계 임원 14명은 지난 26일 복지부 사무실에서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최근 여러 언론보도(본보 8월 18ㆍ21일자) 등을 통해 공론화된 '민영의료보험(이하 민영의보) 보장제한 문제'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복지부는 '민영의보가 공적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결론 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에 대해 "연구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정부정책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손해보험업계 측은 "정부가 의뢰한 보고서도 신뢰하지 못한다면 제3의 연구기관에 다시 재검증을 요청할 수도 있다"며 "복지부 정책추진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달라"고 요구했다. 약 2시간 동안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으나 결국 서로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회의는 끝나고 말았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마지막 기대마저 날아가버린 것 같다. 그간 소비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류해왔던 손보사 노조의 총파업도 이제 말릴 명분이 없어졌다"고 털어놨다. 지난 정부와 보험업계간 극단적 대립의 악몽이 다시 재현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공보험과 민영보험의 공존은 불가?

지난 수년간 양측이 이견이 좁혀지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근거'는 없이 '주장'만 난무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06년 KDI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KDI가 정부에 다소 불리한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하자, 정부는 연구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말바꾸기'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추진의지는 확고해보인다.

의지가 확고한 것은 손해보험업계도 마찬가지다. 사실 민영의보 축소는 손보업계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절박한 사안이다. 2007회계연도 기준 손해보험 전체시장 32조 중 실손형 상품의 비중은 약 37.4%를 차지한다. 자동차보험(34.5%), 일반보험(10.8%)이 그 뒤를 잇는다.

그러나 자동차보험은 공적 성격이 강해 작년에도 520억원(3.8%) 손실이 나는 등 이익창출에 한계가 있다. 사실상 실손형 민영의보 상품이 손보업계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손형 민영의보의 보장범위를 100%에서 80%로 축소하면 차별성이 사라져, 상품의 존재기반이 흔들린다는 게 업계측 주장이다.

정부는 실손형 민영보험 가입자가 줄면 의료이용도 감소해 건보재정에 보탬이 될 거라는 계산이다. '니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논리인데, 이런 식이라면 합리적 공존은 불가능해 보인다.

판단기준은 소비자의 의료비 경감

그러나 선진국처럼 공보험의 보장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공보험과 민영보험의 공존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60%가 조금 넘는다. 암과 같은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률은 급여율이 47%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의료비 중 공공재원 비율이 70%를 훨씬 웃돈다. 동유럽의 체코나 슬로바키아처럼 90%대에 이르는 나라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간영역의 보장범위만 축소시킬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공보험은 현행체계를 유지하는 한편, 민간부문으로 하여금 정부가 보장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장토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것이 국민건강 안전망을 확보하면서 정부의 재정부담은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건보재정악화는 건보의 문제로 풀어야지, 민간부문을 축소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또한 정책추진 방법에 있어서도 민간기업을 무조건 이익만 추구하는 집단으로 매도하고 멀리할 게 아니라, 오히려 태스크포스팀(TFT)에 참여시켜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외국선 정부개입 축소 시장역할 확대 속 상호 건전한 경쟁 유도

주요 선진국의 경우 민간보험만을 규제하는 별도의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공적보험보다 민간보험이 먼저 성립한 국가의 경우 최소한의 형태로 규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건강보험 부문에서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늘리는 개혁이 추세다. 정부의 재정부담은 줄이면서 의료비 보장은 확대하기 위해서다.

우선 영국,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태리 등과 같이 국민보건서비스(NHS) 형태로 의료보장을 하는 실시하는 경우 본인부담금이 거의 없다. 나머지 유럽연합(EU) 국가들도 총의료비 중 공공부문 지출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민간보험 지출이 10%를 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도 의료보험이 정부재정에 부담이 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추세다.

의료서비스에 경쟁시스템을 도입한 네덜란드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건강보험을 규제하는 대신 의료공급자, 의료소비자, 보험회사가 스스로 시장을 이끌고 나간다. 공적 보험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본건강보험 운영도 민간으로 넘겼다. 그러나 비영리 민영보험사들이 전체 건강보험 회사의 3분의 2 가량이기 때문에 민영보험시장이지만 공익적 성격이 강하다.

프랑스는 공보험과 사보험이 적절히 공존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환자가 진료를 받은 후 질병금고로부터 환불을 받는 방식의 상환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질병금고에서 환불해주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민간상품이 보장하는 방식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도입하려고 하는 자기부담금 의무설정의 경우 독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주요선진국에서도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일괄적으로 범위와 적용방법을 정부가 제시하지는 않고 대부분 보험사 자율에 맡기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환자의 책임의식을 환기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최소한 1유로 이상을 환자가 본인 부담하도록 규정했다. 경쟁시스템을 도입한 네덜란드나 보험규제가 심한 호주의 경우에도 진료비의 100%를 보장하는 상품을 허용하고 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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