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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영 소설집 '그린핑거'/ 낭만적이지 않은… 살벌, 속물적인 사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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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영 소설집 '그린핑거'/ 낭만적이지 않은… 살벌, 속물적인 사랑들

입력
2008.08.2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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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윤영(37)씨는 1998년 등단 이래 폭넓은 관심사와 예리한 안목, 재기 있는 이야기 솜씨로 현대 사회의 문제적 현실을 그려온 개성파 작가. 등단 10년을 맞은 그녀가 세 번째 소설집 <그린 핑거> (창비 발행)를 펴냈다.

다섯 단편의 연작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2006년 한국일보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른 표제작 '그린 핑거' 등 수록작 7편의 주제는 연애와 결혼으로 요약된다. 작가는 낭만적 사랑이란 허위를 걷어내고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애와 결혼이 작동하는 방식을 여러 여성 캐릭터를 통해 명료하게 드러낸다.

표제작은 교정 수술로도 완벽히 감출 수 없는 언청이 흔적과 불임의 이중 고통에 시달리는 한 유부녀의 이야기다. 열등감을 잊으려 정원 가꾸기에 몰두하던 그녀는 남편이 기형아 출산을 걱정해 임신을 피한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부푼 의심은 잔혹 행위로 치닫는데, 작가는 그 파국을 직접 드러내는 대신 세련된 방식으로 암시한다. 이혼 사실을 감추려 임신부를 연기하는 여성을 주인공 삼은 '전망 좋은 집' 역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혼 여성의 처지를 묘파한다. 색다른 반전이 읽는 재미를 더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내처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연작으로 20, 30대 젊은 세대의 연애 전반을 탐문한다. 한 편의 경장편으로 읽어도 무방한 이 연작엔 제가끔의 연애ㆍ결혼관을 지닌 남녀 네 쌍이 등장한다.

그중 중심인물은 28세 여성 펀드매니저 지은과 36세 출판업자 우인. 지은의 남성관은 매우 타산적이다. "과연 여자로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뭘까. 남는 건 결혼밖에 없을까? 이런 사회학적 질문에 철학적 답변을 요구하는 건 난센스다. 내 답변은 예스다."(95쪽)

우인은 의대생 시절 소수 종파에 몸담은 이후 제 장기(臟器)를 아낌없이 떼어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실천한다. 그에게 최고의 연인은 자기 신앙을 이해하고 같이할 여자.

철저한 속물근성과 맹목적인 인류애, 상극인 두 남녀는 각자 실연을 비롯한 고통의 상처를 안고 연작 마지막 편에서 조우한다. 둘 사이에 싹튼 호감은 갖은 난관을 딛고 깊어간다.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연작은 김씨 작품 중 흔치 않게 낙관적 분위기로 끝맺는다.

김씨는 "그간 내 소설 속 인물들은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했지만, 지은과 우인은 시련 이후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 진실하게 서로를 대한다"면서 "순수한 사랑이란 결코 없을 테지만, 실존감 있는 두 영혼 사이엔 소울 메이트(soul mate)라 할 만한 관계가 맺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결말을 썼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야기를 중시하는 작가다. "독자가 페이지를 서둘러 넘기고 싶게끔 만드는 힘이 서사와 플롯이다. 추리소설 기법을 즐겨 쓰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아울러 그녀는 오늘날의 이야기를 선호한다.

제인 오스틴, 채만식 등이 보여주듯 당대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결국 시대를 앞서나가는 작품을 낳는다고 믿는다. 하여 그녀의 소설은 통찰과 통속 사이 외줄타기다.

예컨데 금융산업에 종사하며 명품 시계 브랜드 '블랑팡' '칼라트라바'를 찬 남자에게 끌리는 지은은 언뜻 여느 칙릿 속 '골드미스'와 다름없어 보인다. 그런 지은에게 묵직한 양감을 느끼게 되는 것,

그것이 김윤영 소설의 묘미다. 김씨는 현재 첫 장편을 집필 중이다. 한국문단에 흔치 않은 '경제소설'이 될 것이란 게 작가의 귀띔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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