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부부의 날이었다. 미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리고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 사흘째인 27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한 목소리로 "오바마"지지를 외쳤다. 민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버럭 오바마 상원의원 사이에 쌓일 수밖에 없었던 감정의 앙금을 털어내고 당 후보에 대한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음을 알리려는 듯 그들의 행동과 목소리는 크고 힘찼다.
힐러리 의원은 이날 대선후보 결정을 위한 대의원들의 호명투표 과정에서 형식적 표 대결 대신 환호와 갈채로 오바마 의원을 대선후보로 추대할 것을 제안했다. 민주당 단합을 알리는 극적인 연출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오바마 의원에 대한 불만감을 감추지 않았던 클린턴 전 대통령도 연설을 통해 "오바마는 준비된 대통령 후보"라고 치켜세웠다. 오바마 의원의 대선승리를 위해 힐러리ㆍ클린턴 부부가 부창부수하고 있음을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각인하는 장면이었다.
힐러리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자신과 오바마 의원을 두고 실시되던 대선 후보 결정 호명투표를 중단시키고 오바마 의원 선택을 박수로 결정하자고 한 것은 잘 짜여진 한편의 드라마였다. 주 단위로 의사를 표시하는 호명 투표가 앨라배마주를 시작으로 알파벳 순으로 이뤄지고 있을 때 힐러리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뉴욕주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전당대회장에 나타났다.
힐러리 의원은 뉴욕주 호명투표가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를 잡고 "미래를 바라보며 단합된 정신으로, 그리고 승리를 목표로 우리 당과 우리 나라에 대한 믿음을 갖고 지금 이 순간 한 목소리로 함께 오바마가 우리의 후보이고 그가 우리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외치자"고 호소했다. 힐러리 의원은 이어 호명투표 중단을 요청하면서 "일리노이주 출신 오바마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선정됐음을 (만장일치로) 선언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의 열렬한 환호가 뒤따랐다.
힐러리 의원을 열렬히 지지하는 대의원들이 힐러리-오바마의 막후 합의를 무시하고 돌발 상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민주당이 대선 승리를 위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힐러리 의원이 호명투표를 중단시킬 때까지 오바마 의원의 대의원 확보는 1,500명을 넘어서고 있었고 힐러리 의원은 300여명에 그치는 등 실제 투표 결과도 오바마 의원이 압도적이었다.
전당대회에서 주요 연사로 나선 클리턴 전 대통령이 오바마 의원 지지를 표시하기 위해 동원한 수사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극적이고 화려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나의 대통령 경험에 비춰볼 때 오바마야 말로 대통령직에 걸맞은 인물"이라며 전에 없이 강한 어조로 오바마 의원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입장을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어 "나는 오늘 밤 오바마 의원을 지지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면서 "오바마는 미국을 이끌고 세계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복원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 대통령 후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최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의원의 대통령 자격을 의심하는 듯한 발언을 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이날의 변화는 경선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털고'대의명분을 따르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나아가 "오바마는 지난 8년 간의 분열과 공포로부터 단결과 희망으로 우리를 이끌어 갈 것"이라며 "여러분이 만약 아직도 미국을 '희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아내 힐러리와 딸 첼시, 그리고 나와 함께 오바마를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하자"고 촉구했다.
■오바마 관례 깨고 깜짝 등장 '바이든 띄우기'
깜짝 등장이었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민주당 전당대회 3일째인 27일 대회장인 덴버의 펩시센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당대회의 주연은 마지막날 등장하는 관례를 깨는 파격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날 조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을 띄우기 위한 그의 예상 밖의 행보는 전당대회장을 가득 메운 대의원들의 힘찬 함성을 자아냈다.
이날의 주인공 바이든 상원의원이 막 연설을 마치고 연단을 내려올 무렵 (바이든 의원과 여러분들에게) "선물을 드릴 게 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어 모습을 드러낸 오바마 의원은 바이든 의원을 얼싸안고 격려한 뒤 대의원과 당원들을 향해 "바이든 의원의 가족들과 미국을 바로 세우기 위한 여정을 함께 하게 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오바마 의원은 이어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선언한 힐러리-클린턴 부부에 대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국민?정말 먼저 생각하는 대통령이 어떤 대통령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워줬다"면서 "힐러리 의원이 어젯밤 전당대회장을 뒤흔들어 놓은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거듭 감사의 뜻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오바마 의원은"이번 선거 유세를 시작할 때 우리는 변화가 위에서 아래로 시작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변화는 특별한 일을 하는 보통 사람들에 의해 아래에서 위로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의원은 또"우리는 이번 전당대회를 누구나 우리 당에 가입할 수 있고 미국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노력에 동참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고 싶었다"고 역설했다. 오바마 의원이 사전 예고 없이 등장하자 전당대회장은 순식간에 '오바마, 오바마'연호로 뒤덮이는 등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오바마가 대회장을 찾기 전 언론의 관심은 온통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에게로 쏠렸다. 특히 클린턴 전 대통령이 어느 정도로 오바마 의원을 지지할지가 관심이었다. 그 관심 속에 자칫 부통령 후보의 모습이 가릴 수도 있었지만 바이든 의원의 혼신적인 연설과 오바마 의원의 깜짝 등장은 우려를 씻어냈다.
이날 마지막 연사로 무대에 오른 바이든 의원은 "미국은 근세사에서 어느 때보다 불완전하고 고립돼 있다"면서 "현 공화당 정부하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외교정책이 우리를 건져줄 친구조차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했다"며 부시 정부의 대외 정책을 질타했다.
덴버=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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