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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야단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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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야단법석

입력
2008.08.2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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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는 종종 성가시고 처리 곤란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몇 번째 본 어떤 할아버지는 성경책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중얼거리듯 하나님의 은혜를 역설했다. 출입구 한가운데 서서 설교하는 아주머니도 보았다. 듣다 못한 승객이 저 만치서 "그만해요, 그만하라니까!" 하고 소리지르자 그녀는 "곧 내리겠습니다" 하더니 기어코 할 말을 다하고서야 나갔다. 앉아 있는 젊은 아가씨들에게 다가가 큰 소리로 '말씀의 세례'를 마구 퍼붓는 남자도 보았다. 고개를 숙인 아가씨들은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그것은 말씀이 아니라 말을 토하고 게우는 행위였다.

▦ 공적 공간으로 무대를 바꾸면, 공직자들이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특정 종교를 선양하고 응원하는 것은 국민의 머리에 말을 게워내는 모욕행위와 같다. 아무리 자기 신앙이 소중하고 '이 좋은 믿음'을 널리 전파하고 싶다 해도 특정 종교에 편향된 행동을 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헌법 위반행위다. 그런데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기독교 친화적 환경이 조성되면서 '복음화'의 행태가 문제를 빚기에 이르렀다. 꼭 그런 분위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산다"고 말한 목사도 있으니 그야말로 기함(氣陷)할 일이다.

▦ 불교측이 열거한 차별사례를 보면 정부가 어쩌면 이다지 무심할까 싶을 정도다. 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치러진 '헌법 파괴ㆍ종교 차별 이명박 정부규탄 범불교도대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놀랄 만큼 질서 있고 여법(如法)하게 치러진, 그 유례없는 야단법석(野壇法席)의 자리에서 불자들은 "대한민국 정부는 선교의 도구가 아니다"라고 외치면서 대통령의 공개 사과와 경찰청장 파면 등을 요구했다. 기독교 측도 참석한 행사를 통해 불교계는 종교 간 이해와 종교의 자유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내부적으로는 27개 종단이 합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 이제 정부가 다시 말을 해야 한다. '지나가는 말'로 얼버무리면 효과가 없다. 불교로서도 무릎 꿇은 항복만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위정자들'을 뽑은 것이 공업(共業)이라면 고락의 과보를 함께 받는 것도 공업이다. 대회 봉행사대로 대법회가 정권과의 대결의 계기가 되면 안 된다. "종교탄압을 빌미로 꺼진 촛불집회를 되살리려 한다"고 범불교대회를 비난한 '대통령을 위한 기도시민연대(PUP)'가 맞불 놓듯 30일에 대통령과 국가를 위한 금식기도를 한다는데, 그런 것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한국불교는 그렇게 낮고 얕은 종교가 아니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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